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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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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대기 중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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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기 중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
내용

구름에 있는 물방울은 호수·연못의 물과는 달리 흔히 많은 양이 -20℃ 이하에서 과냉각된 상태로 존재하게 되며, 과냉각된 구름 속에는 얼음결정과 과냉각된 물방울이 공존하게 된다. 매우 순수한 물로 된 물방울의 경우에는 지름이 단지 수㎜ 정도에 불과한 작은 입자로서 -40℃까지 과냉각될 수 있다.

-40℃ 이하의 온도에서는 이와 같이 작은 물방울이 자연적으로 얼게 되나, -40℃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먼지와 같은 아주 작은 외부물질이 혼입(混入)될 때 얼게 된다. 이러한 얼음의 핵(核)으로부터 눈의 결정이 성장하게 되는데, 얼음인자들은 개개의 빙정(氷晶:얼음의 결정)들이 독립되어 있거나 같은 핵을 중심으로 몇 개의 빙정들이 빙정군(氷晶群)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와, 눈송이[설편( 雪片)]·싸락눈[빙구(氷球)]·우박 등 4개의 주요한 형태를 이루게 된다.

얼음으로 포화된 대기 중에서는 얼음결정의 성장면으로 수증기가 확산됨으로써 얼음결정이 성장하게 된다. 얼음결정은 육각형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의 독립적 단위로서 존재하나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복잡하게 성장하여 가지를 많이 갖는 형태로 성장하게 된다.

눈의 결정은 침상(針狀)·각주상(角柱狀)·판상(板狀)·별모양·수지상(樹枝狀) 및 불규칙한 모양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그 크기는 보통 2㎜ 정도이므로 돋보기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눈결정이 여러 개 합쳐지면 눈송이를 형성하게 되어 크기가 보통 1㎝ 정도가 되지만, 내릴 때 수천 개의 결정이 서로 엉겨붙어 큰 눈송이를 이루게 될 때는 수십㎝ 크기가 관찰되기도 한다.

싸락눈이나 우박은 얼음결정들로부터 발생되나 계속적인 성장은 주로 과냉각된 구름 속 물방울과의 충돌에 의하여 진행된다. 눈은 기온이 낮은 한랭한 날에는 큰 눈송이로 성장하지 못하고 1개의 눈송이로 내려 가루눈이 되며, 기온이 높은 포근한 날에는 몇 개의 눈송이가 붙어서 함박눈이 되어 온 세상을 은세계로 만든다.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는 진눈깨비는 지상의 기온이 0℃ 이상일 때 지면 가까이에서 눈의 일부가 녹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싸락눈은 흰색의 투명한 얼음알갱이로서 주로 기온이 0℃ 정도인 초겨울이나 이른 봄에 내린다. 이 싸락눈은 지름이 2∼5㎜로서 공모양·원뿔모양이고, 싸락눈을 중심으로 주위에 물이 엷고 투명하게 얼게 되면 작은 우박이 생기게 된다.

눈은 우리의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의 강설량 측정실태를 살펴보면, 길이의 단위인 자[尺]를 사용하고 있으며, 눈[雪]·대설(大雪)로 나누어 구별하였다. 특히 눈이 없었던 겨울의 무설(無雪)에 대한 기록이 13회나 되며, 무설 이외에도 철에 맞지 않는 눈·대설의 기록도 있다.

철이 이른 가을철의 눈과 대설에 대한 기록은 3회, 철이 늦은 봄철의 눈·대설은 7회의 기록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초여름이나 여름철의 눈은 이변(異變)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신라 벌휴이사금 9년(192) 음력 4월 초여름 경도(京都)에 석 자의 눈이 내렸고, 신문왕 3년(683) 음력 4월 여름에 한자의 눈이 내렸으며, 신라 헌덕왕 7년(815) 음력 5월 여름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도 삼국시대와 다름없이 눈을 측정하였는데, 눈에 관한 자료는 ≪문헌비고≫의 설이(雪異)와 ≪고려사≫의 오행지(五行志)에서 엿볼 수 있다. 두 문헌에서는 다같이 931년(태조 14) 음력 2월에 두 자나 되는 대설이 내렸다는 기록으로 시작된다.

≪문헌비고≫ 설이의 기록에는 대설이 6회인데, 그 가운데 5회가 음력 2월에 내렸고 비와 눈이 같이 내린 우설(雨雪)이 11회 있었다. 그런데 우설의 대부분이 음력 3월과 4월, 특히 음력 4월에 많이 내렸다.

≪고려사≫의 오행지에서도 대설은 음력 2, 3월에, 우설은 음력 3, 4월 특히 3월에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설이 15회, 우설이 13회, 눈이 7회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것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렸던 것은 1363년(공민왕 12) 음력 2월의 대설로서 그 깊이는 석 자에 달하였다.

우박이나 우박설(雨雹雪)로 인한 동사자(凍死者)에 대한 항목으로는 1324년(충숙왕 12) 음력 4월에 있었고, 이상저온에 대한 또 다른 기록으로는 1368년(공민왕 17) 음력 3월에 “센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고 강이 얼어서 강물이 끊어지는 이상저온현상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의 눈에 대한 기록들 중에는 청주 또는 동해안과 같은 지방에서의 기록도 있으나 대부분이 도읍지인 개성의 기록이다. 음력 3월, 즉 기온이 급격히 상승되는 봄철과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접어드는 음력 4월에도 눈이 왔다는 사실은 난후기(煖候氣)의 이상저온을 말하는 자료로서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에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와 다름없이 눈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으나, 주로 재해를 위주로 하여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 대한 단독적인 기록보다는 눈·서리·얼음을 구분없이 저온현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눈에 관한 것만의 월별분포를 살펴보면 총 33회의 눈 중 우설로 기록된 것이 11회로 가장 많고, 대설이 10회로서 두번째이며, 보통눈으로 된 것이 7회, 우박과 눈이 섞여 내린 것이 2회, 눈과 서리로 된 것이 3회로 되어 있다. 눈의 기록이 33회에 지나지 않는 것은 재해를 위주로 기록하는 가운데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것은 기록하지 않은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들 기록 중에서 대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① 1409년(태종 9) 4월 21일 “영흥부(永興府)에 석 자나 되는 눈이 내려 나뭇가지가 눌려 꺾어졌다.”

② 1422년(세종 3) 2월 6일 “제주에는 기르는 말이 많아 1만 마리가 넘는다. 이전까지 이 섬은 따뜻한 곳이어서 겨울에 적설이 없었다. 그런데 금년은 추위가 매우 심하고 눈이 5∼6자나 쌓여 많은 말이 얼어죽었다.”

③ 1453년(단종 1) 1월 29일 “큰 눈이 내려서 3∼4자나 쌓이는 까닭에 새나 짐승들이 굶주려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④ 1502년(연산군 8) 12월 10일 “지난해 겨울 강원도에 한 길이 넘는 큰 눈이 내려 사슴과 노루가 한 군데 기대서서 많이 굶어죽어 살아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⑤ 1526년(중종 20) 1월 24일 “길주(吉州)·명천(明川)·경성(鏡城) 등지에 12월 3일부터 14일에 이르기까지 큰 눈이 내려 평지의 눈깊이는 4∼5자에 달하였고, 밤중에는 광풍이 불어 해수가 밀려와 바닷가의 인가가 물에 잠겨 집을 비우고 도망가거나 눈 속에 빠져 동사하는 자가 대단히 많았다. 경성사람 중 사망자는 무려 100여 인이나 되었다. 이것으로 추정해 보면 나머지 읍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유간보(魚游澗堡)의 군인 한 사람이 또 눈 속에서 얼어죽었다. 길이 막혀 며칠이고 오고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전하기를 함경도의 풍설이변으로 얼어죽은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대설의 기록 중 1526년(중종 20)의 기록에는 계속해서 눈이 내린 일수가 확실히 밝혀져 있으며, 특히 1713년(숙종 39) 4월 6일에는 “교서에서 이르기를 지금 봄철을 맞이하여 양기가 땅에서 피어나고 비가 내릴 때인데 미시(未時:13∼15시)에서 유시(酉時:17∼19시)까지 눈이 계속 내려 한겨울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하여 눈이 계속해서 내린 시간까지 적혀 있을 정도이다.

또한 1607년(선조 40) 7월 3일에 함경도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의 치계(馳啓)에 나오는 단천군수의 보고에는 “6월 1일 신시(申時:15∼17시)에 설상(雪霜)이 크게 일어나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초목이 다 죽었다.”라고 되어 있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을 명시한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앙의 전문관청에서는 ≪서운관지 書雲觀志≫의 관측규정이 실시되면서부터 적설량과 더불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 시각까지도 관측하여 기록하고 있다. <金光植>

속담에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하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질 징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눈의 상태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것으로서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함박눈은 온도가 비교적 높은 온대지방에서나 상층의 온도가 그다지 낮지 않은 곳에서 내리는 습기가 많은 눈인 반면에, 가루눈은 기온이 낮은 한대지방이나 상층으로부터 지표면 부근까지의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 눈의 결정이 서로 부딪쳐도 달라붙지 않고 그대로 내리기 때문에 형성되는 건성(乾性)의 눈이다.

이처럼 눈은 상층대기의 온도분포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가 낮을 때는 가루눈이 내리고 온도가 높을 때는 함박눈이 내리게 된다. 따라서, 떡가루와 같이 고운 싸락눈이 내리면 상층으로부터 한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추워질 징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은 녹아서 수분을 공급하는 이로운 점도 있으나 여러 가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납설(臘雪:납일, 즉 음력 12월에 내리는 눈)은 보리를 잘 익게 하고 춘설(春雪)은 보리를 죽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납설은 한겨울에 내리는 눈이므로 추위로부터 보리를 보호하여 주는 데 반하여, 춘설은 기온이 높아지는 봄에 내리는 눈이기 때문에 한창 자라고 있는 보리에 동해(凍害)를 주어 죽게 한다는 뜻이다.

눈과 관련된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눈싸움과 눈사람 만들기가 있다. 눈싸움은 겨울철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어린이들이 편을 짜서 주먹만한 크기의 눈덩이를 만들어 상대편을 향하여 던지며 즐기는 놀이이다. 눈싸움은 겨울철에 집안에서만 지내기 쉬운 어린이들에게 체력단련의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눈으로 뭉친 눈덩이를 맞아도 상처를 입을 염려가 없으므로 겨울철 어린이놀이로서 이상적인 것의 하나였다.

눈사람 만들기는 작은 눈뭉치를 굴려서 크게 만들어 이를 몸통으로 삼고 따로 만든 작은 눈덩이를 그 위에 올려놓아 사람 모양으로 꾸미는 놀이이다.

눈사람을 만들 때는 혼자서도 하지만 서너 명씩 패를 짜서 누가 먼저 만드는지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눈사람 만들기는 눈싸움처럼 아이들의 체력 단련에도 도움이 되지만 같은 편끼리의 협동심을 길러주며, 독특한 형태의 눈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창의성도 개발시켜 주는 좋은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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