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사 대웅전은 18세기 중엽에 중건된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이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능가사는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사찰이 모두 소실되어서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644년(인조 22) 정현대사(正玄大師)가 산의 남쪽에서 옛 절터를 발견하여 중창하고, 그의 제자들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도 이때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능가사의 건물의 배치는 현재 사찰의 정문격인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사역의 맨 앞쪽에 있고, 뒤쪽으로 대웅전이 들어서 있다. 지형은 거의 평탄하며 건물은 남북의 종축선상에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로, 한 단의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배흘림이 약하고 거친 두리기둥을 세웠다. 원주에 비하여 조그마한 주두가 창방과 용두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장식한 용두가 외삼출목 · 내사출목의 공포를 받쳐주고 있다. 살미첨차 앙서의 굽면은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위로 올라갔으며, 첨차의 곡면 역시 약간 경사를 두고 비스듬히 깎여 있다.
어간(御間)은 4분합문으로 주간포가 3구 있으며, 협간(夾間)은 2분합문으로 주간포가 2구, 툇간은 외여닫이문으로 주간포 1구가 설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조그마한 닫집이 4개의 고주에 결구되어 있으며, 넓은 공간을 4개의 대량과 4개의 고주가 받치고 있다. 내부 공포는 운공형(雲工形)으로 조식되어 있는 살미첨차가 커다랗게 결구되어 있으며, 맨 밑에는 용의 몸통 부분으로 받쳐지고 있다.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된 우물천장이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창호는 빗살무늬를 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이며 직경이 큰 서까래가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설치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가 크며, 건물의 좌향(坐向)이 입구의 방향 때문에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능가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 · 외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영광의 불갑사 대웅전, 부안의 개암사 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하며, 포벽 수장재에 도드라지게 새긴 첨차는 사찰건물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하는 등 조선 중 · 후기 호남지역 사찰건축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물로서 학술적 ·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