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영조 44) 하위지의 후손 용익(龍翼)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홍계희(洪啓禧)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을 대본으로 하여 저자에 관한 연보와 공사문자를 수집해, 1868년(고종 5) 후손 상집(相楫)이 『단계실기(丹溪實紀)』 4권 2책을 간행하였고,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일본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日本大阪府立中之島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다.
3권 1책. 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1수, 서(書) 1편, 소 1편, 교서 1편, 책(策) 1편, 권2·3에 부록으로 복관윤음(復官綸音)·사제문(賜祭文)·유묵(遺墨)·세계(世系)·전(傳)·묘갈명·사실(事實)·입안(立案)·유권(遺券)·원향록(院享錄)·제가기술(諸家記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우국충정이 담긴 서정시가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박팽년(朴彭年)이 도롱이를 저자에게서 빌려갈 때 시로 답한 작품이 있는데, 당시 단종의 나이가 어리고 인심이 흉흉해지며 시사가 날로 어그러져감을 비탄하고 있다.
「지등연구(紙燈聯句)」는 1442년(세종 24) 집현전학사로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서 독서할 때 박팽년·신숙주(申叔舟)·이석형(李石亨)과 함께 서로 주고받은 연구시이다. 「봉송양천사(奉送兩天使)」 2수는 문종이 즉위할 때 중국 사신들과 수창한 작품으로 중국 『요해편(遼海篇)』에 등재되기도 한 명시이다. 시의 흐름이 맑고 깨끗해 문장이 활달하고 여유가 있으며, 괴벽하게 아로새긴 흔적이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소의 「사좌사간소(辭左司諫疏)」는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김종서(金宗瑞) 등을 죽이고 영의정이 되자 저자는 벼슬을 버리고 선산(善山)에 물러가 있었다. 그 뒤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청해 좌사간으로 임명하여 불렀으나 병을 사칭해 이를 사퇴한 상소이다. 교서의 「권농교서(勸農敎書)」는 1444년 왕명으로 호조(戶曹)에 내린 교서인데, 권농정책에 대한 의견서로서 『동문선(東文選)』에도 수록되어 있다.
책 가운데 「정대책(庭對策)」은 1438년 왕명으로 시정(時政)의 문제를 제시하자 그 대책을 논한 것이다. 주로 과전·노비·의창 등의 제도에 관한 대책을 밝힌 명문으로 『장원록(壯元錄)』에 등재되어 있다. 이 밖에 부록의 「복관윤음」 등은 사육신의 사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