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수양개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유물이 출토된 유적.
이칭
이칭
애곡리유적
유적
건립 시기
후기 구석기시대
면적
212,208㎡
소재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97년 10월 10일 지정)
소재지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182-1번지
내용 요약

단양 수양개 유적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유물이 출토된 유적이다. 1983~2015년까지 13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50개소의 석기 제작소와 약 10만여 점의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 시대에 걸쳐 석기 양상, 제작 기법, 유물 수와 석기 구성의 다양성 등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 문화 양상을 대표하는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유물이 출토된 유적.
개관

단양 수양개 유적(丹陽 垂楊介 遺蹟)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은 3~4단구(段丘) 위층에서 출토된 자갈돌 주먹도끼(약 30만 년 전)이며, 그다음에 Ⅰ · Ⅲ지구의 중기 구석기 문화층 유물은 중기 구석기시대로 해석된다. 후기 구석기시대는 여러 문화층이 밝혀졌는데, 최근 발굴된 Ⅵ지구의 4문화층(46ka, ka=천 년)은 큰 주1로 만든 주2가 특징을 이루는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IUP: Initial Upper Paleolithic)로 비정되며, 3문화층(42ka)은 비전형적인 좀돌날몸돌, 슴베찌르개와 함께 돌자와 얼굴돌이 출토되어 현생인류의 문화와 예술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화층이다.

Ⅵ지구의 2문화층(20ka)과 Ⅰ지구의 후기 구석기 문화층(20ka)은 아주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좀돌날 문화가 발달되어 대한민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Ⅰ지구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슴베찌르개가 Ⅵ지구 2문화층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아 생활 방법의 차이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다음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는 Ⅰ지구에서만 간략하게 조사되어서 그 성격을 유추할 뿐인데, Ⅱ지구에서는 마한시대의 취락터로 26기의 집터가 발굴되어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단양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거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특징적인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이들을 통한 대한민국과 아시아의 구석기 문화 연구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수양개 Ⅰ지구

해발 130m(+15m)를 기준으로 발달된 2단구 자갈층에 있는 1지구의 긴 구덩이에서 확인된 중기 구석기 문화층(5층)에서는 주3과 같은 굵은 입자의 자갈돌을 돌감으로 이용하여 직접떼기로 만든 긁개, 찌르개, 주먹대패 등이 출토되었다.

찰흙층에 발달된 후기 구석기 문화층(6층: 18,630BP · 16,400BP)에서는 3만 점에 가까운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90% 이상에서 돌감으로 이용된 주4 모난 돌은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하류로 약 1.5km 떨어진 산제골에서 가져다가 50군데의 석기 제작소를 중심으로 석기를 제작하였음이 밝혀졌다. 주5을 중심으로 출토된 격지〔剝片〕 가운데 셰일 18점이 들어맞아 석기 제작 행위와 복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출토된 석기에는 다양한 형식의 주먹도끼와 전형적인 찍개도 있으며, 특히 250점 정도의 좀돌날몸돌과 약 50점의 슴베찌르개가 매우 특징적인 유물로 해석된다. 좀돌날몸돌은 제작 방법으로 분류하여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의 타면(striking platform)이 사용되었으며, 1유형은 자연스러운 것(unprepared), 2유형은 긴떼기(longitudinal flaking), 3유형은 옆떼기(vertical 주6이다.

다시 구체적으로 1유형은 a · b형식으로 세분될 수 있다. 특히 제일 많은 2b유형은 유우베스〔湧別川〕 형식과 비교되며, 2e유형은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러한 연모 이외에 이 유적의 중요성을 더하여 주는 것은 몸돌에서 떼어 낸 격지이다. 여러 곳에서 많은 격지가 돌날몸돌과 같이 발굴되어 돌망치, 모룻돌 등과 함께 석기 제작 행위의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 행위의 중심지는 확인된 50군데 모룻돌을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어서 왕성한 석기 제작 활동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석기 이외에 젖소의 정강이뼈에 물고기 모양을 새긴 예술품(8.2x3.5㎝)과 활석으로 만든 치레거리가 발굴되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사냥 대상물에 관한 풍요 기원이나 주술 예술의 표현으로 보여 문화 해석과 복원에 중요한 자료이다.

수양개 Ⅱ지구

1지구 조사가 끝난 10년 뒤에 조사하게 된 2지구는 1지구로부터 약 500m 하류 쪽에 있는데 5~7차(1995~1996년)의 조사를 통하여 모두 26개의 집터들이 밀집된 상태로 취락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 집터들은 거의 모두 불에 탄 채로 발굴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생활유물(토기, 철제 토기, 철제 낫, 구슬, 곡물 등)들이 발굴되어 당시 생활 형태를 짐작할 수 있으며 이들 유물과 주7으로 마한시대의 취락임이 밝혀졌다.

6차 조사 때 찾은 22호 집터는 ‘呂’ 자 모양의 평면 형태를 이루며, 크기는 930x720x47㎝로, 출입구는 집터 남벽 중앙에 위치하며 바닥 면은 진흙 굳힘을 하였다. 불 땐 자리는 타원형으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진흙 띠를 돌려 만든 형태로 바닥에는 강자갈을 1겹 깔았다. 벽면에는 불탄 기둥과 판자가 남아 있다. 토기 독 · 토기 단지 · 화살촉 · 옥 등이 출토되었으며, 다량의 낟알과 더불어 복숭아씨가 나왔다.

이 집터는 발굴된 집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잘 남아 있어 박물관 2층에 축소 · 복원 · 전시하였다. 허문회 교수(서울대학교)의 감정 · 분류로 확인된 곡물 가운데에는 주로 밀이 많아서 당시 사람들의 주식은 밀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수양개 Ⅲ지구

1문화층(38ka BC)에서는 돌날 · 좀돌날과 관련된 유물(석영맥암 70%)은 확인되지 않았고, 2문화층(37.9ka BC)에서야 셰일로 만든 돌날 · 좀돌날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3문화층(31~34ka BC)에서 슴베찌르개(1점)가 좀돌날몸돌과 공반되고 있다. 특히 지표 채집으로 찾은 수양개 1지구에서도 없는 호로카〔幌加〕 기법으로 만든 대형 배 모양 좀돌날몸돌(156.6 × 55.5× 52.1mm, 417g)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몸돌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바가 없어 그 연구와 해석이 주목된다. Ⅲ지구의 3문화층(9차에서 2문화층)에서 원지층 출토 3점, 지표 채집 3점의 좀돌날몸돌이 모두 셰일인데, 10차 조사의 3문화층에서 2점, 2문화층에서 1점은 모두 차돌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미 석기 제작이 편리하고 좋은 셰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석영을 재료로 한 좀돌날몸돌이 두 개의 문화층에서 출토된 것은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2 · 3문화층의 연대, 특히 2문화층은 Ⅵ지구의 3문화층과 비슷하다고 볼 때 앞으로 Ⅲ · Ⅵ지구의 비교연구가 주목된다. 3문화층에서 출토된 슴베찌르개도 같은 맥락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수양개 Ⅳ지구

수양개 Ⅰ지구에서 하류 쪽으로 3.5km 떨어진 곳(단양군 적성면 하진리)에 있으며, 말목산 끝자락의 남한강과 잇닿은 산사면 아래쪽 끝부분에 해당한다. 단양 수중보 건설(해발 132m)을 계기로 2009년 처음 찾았고 2013~2015년에 3차례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3,183㎡에서 40,679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유물 밀집도가 매우 높으며, 4개의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제2하성단구 위에 형성되어 있고, 하성 범란 기원 및 사면 기원 모난 돌이 포함된 퇴적층이 약 10m로 매우 두텁게 퇴적되어 있다. 층위는 21개로 구분되며 문화층은 모난 돌이 포함된 층으로 뚜렷한 경계를 이루며 MIS 3기(4 · 3문화층)~MIS2기(2 · 1문화층)에 해당하는 4개의 문화층이 발달되어 있다.

1문화층(6지층)은 다른 문화층에 비해 훼손이 심하고 적은 유물(582점)이 출토되었다. 돌감은 다른 문화층에 비해 차돌을 많이 사용하였고, 긁개 · 주8 · 뚜르개 등 석기 구성이 단순한 편이다.

2문화층(7지층, 22,000B.P.)에서는 21,744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좀돌날몸돌과 좀돌날몸돌 원형, 좀돌날 등 좀돌날 생산이 본격화되었으나 슴베찌르개는 나타나지 않음이 주목된다. 또한, 돌날과 격지를 이용한 긁개, 밀개와 더불어 도끼형 석기, 간석기, 돌그릇, 나뭇잎 모양의 찌르개 등 생활 도구의 급격한 증가는 다른 문화층과 달리 생활 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형화된 밀개가 많이 나왔고(332점), 양질의 돌감 선택, 규격화된 몸체의 선택, 정형화된 몸체에 잔손질한 수법은 다른 문화층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밀개 제작에 특화된 전문성을 보여 준다. 밀개의 형태와 속성을 비교한 결과 4문화층에서 1문화층으로 갈수록 점차 크기가 작아지는 경향성을 보인다.

3문화층(9지층, 40,000B.P.)은 돌날과 슴베찌르개 생산이 4문화층에 비해 감소한 반면, 좀돌날 생산이 시작된다. 몸체 조정을 하지 않고 좁은 옆면에서 좀돌날을 생산한 원시형 좀돌날몸돌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좀돌날 제작의 첫 사례가 된다. 특히 길쭉한 자갈돌에 4㎜ 간격으로 일정한 길이와 깊이로 23개의 선을 새긴 돌자는 현생인류가 수학적인 개념, 측정의 개념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돌자와 함께 얼굴돌 · 줄새김돌 등 새로운 유형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이전 시기와는 다른 문화 양상을 보여 준다. 출토 유물은 7,470점이다.

4문화층(13지층, 42,000B.P.)은 대형 돌날의 생산과 슴베찌르개의 제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정형성을 지닌 석기의 비율과 구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단순한 편이다. 돌날을 이용하여 제작한 슴베찌르개는 73점으로 8가지 형식으로 분류되며, 쓴자국 분석 결과 찌르는 기능보다는 자르는 기능이 있음이 밝혀졌다.

절대연대 값과 몸돌 · 돌날몸돌 · 돌날 등에서 보이는 주9 기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특징은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의 문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어, 동북아시아에서 현생인류의 이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 자료가 된다. 출토 유물은 10,883점이다.

수양개 6지구유적의 각 문화층별로 돌감 선택, 점유 공간, 유물 구성, 제작 기술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은 기술의 발전, 생활양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또한, 초기 돌날 문화로부터 좀돌날 문화에 이르기까지 현생인류의 돌날 문화 기술 체계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상을 잘 보여 주고 있어 중국, 시베리아의 후기 구석기 초기 문화 양상과 현생인류의 이주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성과 및 의의

단양 수양개 유적은 남한강변 단구 위의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하며, 강줄기를 따라 3.5㎞ 범위 6개 지구에 걸쳐 유적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1983~2015년까지 13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50개소의 석기 제작소와 약 10만여 점의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 시대에 걸쳐 석기 양상, 제작 기법, 유물 수와 석기 구성의 다양성 등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 문화 양상을 대표하는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돌감은 초기에 셰일 중심에서 늦은 시기로 가면서 흑요석, 주10 등 양질의 돌감 선택 경향성을 보여 주며, 돌자, 얼굴돌, 줄새김돌 등에서는 현생인류의 인지 능력과 예술 활동에 관한 문화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날 문화와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이 확인되었고, 시간이 가면서 석기 구성과 제작 수법의 변화 양상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어 석기 제작 기술의 발전 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특히 수양개 유적 6지구 4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 문화 양상이 확인되어 중국 내몽고 수이동고우〔水洞溝〕 유적,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IUP유적군과 함께 현생인류의 등장과 이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융조, 우종윤 등, 『단양 수양개 Ⅲ지구 구석기유적(9차)』(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13)
이융조, 우종윤 등, 『단양 수양개 Ⅲ지구 구석기유적(10차)』(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13)

논문

이융조, 「단양수양개 후기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연구」(『김용덕박사정년기념사학논총』, 1987)
이융조, 「단양수양개유적발굴조사보고」(『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연장보고서』, 충북대학교박물관, 1985)
이융조, 「단양수양개 구석기유적」(『청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충북대학교박물관, 1984)
이융조, 「단양 수양개 구석기유적 발굴약보고서」(『’83 충주댐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 1983)
주석
주1

돌날떼기로 돌에서 떼어 낸 길이가 너비의 두 배를 넘는 긴 격지. 후기 구석기 시대에 발달한 것으로 그대로 칼날같이 쓰거나 약간 손질하여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우리말샘

주2

슴베를 만들어서 창이나 화살 따위에 꽂아서 쓰는 찌르개.    우리말샘

주3

모래가 뭉쳐서 단단히 굳어진 암석. 흔히 모래에 점토가 섞여 이루어지는데 건축 재료나 숫돌로 쓴다.    우리말샘

주4

점토(粘土)가 굳어져 이루어진 수성암(水成巖). 회색이나 검은 갈색을 띠며, 흔히 얇은 층(層)으로 되어 잘 벗겨지는 성질이 있다.    우리말샘

주5

대장간의 모루와 같이 석기를 만들 때에 받치던 돌.    우리말샘

주6

긴 돌의 옆면을 힘차게 쳐서 격지 따위를 떼어 내는 방법.    우리말샘

주7

탄소의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하여 절대 연령이나 연대를 재는 방법. 생물이 죽으면 이산화 탄소의 결합이 끊겨 사체(死體) 속의 탄소 14가 일정한 반감기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시료 속의 탄소 14의 양을 근거로 그 생물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우리말샘

주8

돌날이나 격지의 한쪽 끝을 잔손질하여 일반적으로 날이 둥글며 너비보다 길이가 더 길게 만든 구석기 시대의 연장.    우리말샘

주9

몸돌의 둘레에서 격지를 떼 낸 후에 윗부분을 쳐 내는 방법.    우리말샘

주10

정장석, 석영, 운모 따위의 결정(結晶)으로 이루어진 화성암. 규산이 많이 든 광석으로, 흰색을 띠며 물결무늬가 있다. 도자기나 건축 재료로 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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