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혈연·인연·입양으로 관련된 일정 범위의 친족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들 관계는 수직적·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떠한 확장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부부와 그들의 미혼자녀만 포함하는 핵가족이 형성된다. 장남 부부만을 포함하도록 하는 수직적 확장 규칙이 적용되면, 부부와 그 장남 부부와 그 미혼자녀로 이루어지는 직계가족이 형성된다. 또한 장남 부부 이외에 차남 이하의 부부까지 포함하도록 수평적 확장이 허용되면, 부부와 그 장남 부부와 차남 부부, 그들의 미혼 자녀를 포함하는 방계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확장의 규칙에는 여러 가지 대안이 있지만 한국 가족과 관련하여 의미가 있는 것은 이상의 직계가족과 방계가족이다. 종래의 가족제도 논의에서는 가족 구성의 범위가 핵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확대된 형태를 일반적으로 ‘대가족’ 또는 ‘확대가족’으로, 또한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가족을 ‘대가족’이라 칭한다.
대가족은 구성 범위가 확대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가족원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대가족이라 할 때 이는 단순히 가족원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5명의 자녀를 낳은 핵가족은 7인 가족으로서 부부와 그 장남의 부부 4인으로 이루어진 직계가족보다 가족원의 수가 많다. 또한 몇 명 이상이 되어야 ‘대’가족이라고 할지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대가족제도 하의 조선시대 가족 규모를 살펴보면, 다인수 가족도 존재하지만 평균 가족원 수는 4∼5인으로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이념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의 종법제에 입각한 가족제도를 이상적인 가족제도로 여기게 되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양변적 방계가족이라 할 수 있는 확장 규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제한적이지만 여러 자료에 의하면, 딸과 사위를 포함하는 가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친영제를 도입하여 종래의 서류부가에 의한 모처-부처 혼인거주규칙을 부처제로 변환하고, 상속제와 양자제를 종법의 이념에 부합하도록 개정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동과 함께 이러한 가족제도의 변화가 작용하여 조선 중기에는 남계·직계적인 직계가족을 기본으로 하는 대가족제도가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의 대가족이 부모를 중심으로 모든 형제가 혼인하여 함께 가족을 이루어 생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데 비하여, 조선의 대가족은 장남의 경우는 혼인 후에 부모와 함께 가족을 형성하지만,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경우에 따라서 일부가 부모와 형의 부부와 한 가족을 이루지만(방계가족), 대부분이 독립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30년 산음, 1756년 곡성, 1807년 양좌동, 1825년 대구의 호적에 의한 분석을 보면, 양반층의 경우 각각 0%, 5.6%, 9.6%, 8.4%가 방계가족을 이루고 있으며, 직계가족은 각각 8.7%, 23.3%, 40.4%, 33.7%로 나타나고 있다.
대가족이라 할 때는 구성의 원리가 핵가족에 비해 확장된 범위의 친족원까지를 포함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통사회의 가족제도를 대가족제라고 할 때 의미하는 가족유형은 일반적으로 부부와 장남 부부, 장손 부부 등으로 구성되는 직계가족이다. 직계가족은 구성 범위가 남계․직계적으로 확대된 것인데, 이러한 확장은 단순히 범위와 크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가치와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핵가족이 부부의 혼인으로 생성되고 성장-축소-소멸의 과정을 겪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직계가족은 한번 생성되면 규모나 세대의 수가 변화하기는 하지만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가계를 계승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입양을 통해 계후자를 획득하고, 심지어 가족원이 한 명도 없는 경우에도 사후양자를 통하여 일가를 부흥할 수 있다. 이처럼 대를 끊지 않고 가계를 영원히 지속한다는 관념은 직계가족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가족은 안정성이 높아서 일부 가족원이 사망하거나 이혼하더라도 해체되지 않고 지속된다. 따라서 가족관계는 부자관계 중심으로 편성되고, 효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조선시대가 직계가족을 이상으로 하는 대가족제 사회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가족유형의 분포를 볼 때 직계가족 또는 방계가족이 다수를 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가족제도 아래서도 한 시점의 가족유형을 보면 부부가족이 다수를 점한다. 앞에서 살펴본 산음, 곡성, 양좌동, 대구의 호적 분석에 의하면, 양반층의 경우 각각 75.9%, 57.8%, 45.2%, 56.4%의 가족이 부부가족으로 나타난다. 이들 부부가족은 장래에 장남이 성장하여 혼인하고 부모와 함께 가족을 이룬다면 직계가족 형태로 이행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장남 이외의 아들들이 혼인과 동시에 분가하는 것이 허용되므로, 한 시점에서 관찰하면 어느 경우라도 부부가족이 다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직계가족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인구총조사에 의한 가족유형은 친족가구를 핵가족, 직계가족, 기타 가족으로 구분하여 제시되는데, 이때 직계가족에는 ‘부부와 양(편)친’ 형태와 ‘부부와 양(편)친과 자녀’ 형태가 포함된다. 인구총조사에 따라 친족가구 중 직계가족의 비율만을 연도별로 보면, 1970년 19.1%, 1975년 11.4%, 1980년 11.0%, 1985년 10.7%, 1990년 10.2%, 1995년 9.1%, 2000년 8.0%, 2005년 6.9%, 2010년 6.2%로 나타난다. 이는 조선 후기의 직계가족이 23%∼40%로 나타난 것에 비교할 때 매우 낮은 수치이며, 또한 최근 40년간에는 급격한 감소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 한국 가족은 핵가족의 비율이 높아지고 직계가족의 비율은 감소하고 있고, 특히 혼인한 장남 부부가 분가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 핵가족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대가족(직계가족)을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계존속과 조상숭배 등을 강조하는 직계가족적인 가족가치가 남아 있고, 분가한 장남 가족과 부모 가족 사이의 유대가 강하게 남아있으므로 완전한 핵가족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