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학회 ()

목차
근대사
단체
1969년 대구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목차
정의
1969년 대구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연원 및 변천

1969년 4월 15일 김익호(金益鎬)·박영규(朴榮圭)·한상준(韓相俊)·김영하(金英夏)·김엽(金燁)·김정학(金廷鶴)·홍순창(洪淳昶)·허진영(許眞暎)·황종동(黃鍾東) 등 대구 소재 경북대·영남대·계명대·효성여대의 사학과 교수들이 기존의 춘추학회(春秋學會)와 한국사학연구회(韓國史學硏究會)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범대구지역 역사학회로서 새로운 학회의 창립을 결정했으며, 한상준·김엽·허진영·황종동 교수 등에게 학회규약의 초안 작성을 의뢰하였다.

같은 해 4월 25일 영남대학교 문화동 교사에서 3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해 먼저 학회의 명칭을 지금 대구의 구(邱)자 대신 큰 이름으로서 공자의 이름 구(丘)자를 취해 대구사학회(大丘史學會)로 정하고, 18조로 구성된 학회의 규약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규약에 근거해 대표간사에 김익호(경북대 문리대 사학과), 총무간사에 이병휴(경북대 사범대 역사과), 연구간사에 황종동(효성여대 역사과), 편집간사에 허진영(영남대 문과대 사학과) 등의 간사진을 선출하였다.

이후 학회 활동을 개시해 5월 28일에 이선근(李瑄根 : 영남대학교 총장)의 「한국민족의 전통」, 김성복(金成福 : William & Mary대학 조교수)의 「미국사학계의 최근의 동향」을 주제로 하는 제1회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7월에는 김용기(金龍基)의 「임진난시(壬辰亂時)의 피로인쇄환관계(被擄人刷還關係) 신자료(新資料) 『해동기(海東記)』고(考)」 등 10편의 논문과 홍순창(洪淳昶)의 『일본농경문화의 기원(日本農耕文化の起源)』 서평 등 세 편의 서평으로 구성된 『대구사학』 제1집을 ‘동원김익호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東苑金益鎬敎授華甲紀念史學論叢)’으로 간행해 지방에 위치한 사학회로서는 전국 최초로 본격적인 학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5월 28일에 시작된 연구발표회는 연 2회 개최하다가 1977년부터 년 4회로 확대되었으며, 학회 창립 30주년인 1999년 12월 18일에 제100회 연구발표회가 개최된 바 있다. 1969년 7월에 제1집을 간행한 바 있는 학회지 『대구사학』은 2020년 8월 현재 제140집을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1986년 10월 24∼25일 양일간 대구매일신문사 후원으로 지방사 연구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대회에서 발표된 논문과 종합토론의 내용은 대구사학 제30집(지방사연구 특집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96년 12월 14일 정기총회에서 간사체제(幹事體制)를 이사체제(理事體制)로 개편해 명실상부한 전국학회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 총 회원수는 250여 명이며, 회원이 대구지역 연구자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하고 있어, 비록 대구지역에서 출발한 학회지만 전국 학회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집필자
이병휴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