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동인회 ()

근대사
단체
1906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된 한인유학생단체.
이칭
이칭
동인학회
정의
1906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된 한인유학생단체.
개설

동인학회(同寅學會)라고도 한다. 사무소를 동경의 간다(神田)에 두었으며, 유학생간의 학식 교환을 통한 국가부에 주요 목적을 두었다.

연원 및 변천

1907년 7월 임원으로 회장 김현수(金顯洙), 부회장 구자학(具滋鶴), 총무원 김진용(金晉庸), 평의원 진경석(陳慶錫)·채기두(蔡基斗)·유목(劉睦)·원훈상(元勛常)·이강현(李康賢), 이 밖에 편찬원·서기원·회계원·간사원 약간 명이 활동하였다.

기능과 역할

주요 활동으로는 단지동맹(斷指同盟)과 국채보상운동 지원, 동인학교(同寅學校) 경영과 ≪동인학보 同寅學報≫의 발간 등이 있다. 1907년 1월 회장 채기두는 특별총회를 열고 단지동맹의 상황을 설명하고 의연금 17원70전을 모아 지원하도록 하였다.

2월 28일 정기총회에서는 김진용·이강현 등의 발의로 일본에 처음 유학한 학생들의 일본어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회 사무소에 6개월 속성과로 동인학교를 설립, 강사로 김진용·이강현 외에 윤풍현(尹豊鉉)·안영수(安英洙)·김영식(金永植)·현구(玄榘) 등이 선임되었다.

김진용은 학교회계원, 이강현은 학교간사원을 겸임하였다. 3월 31일 총회에서는 국채보상의연금 22원10전을 거두어 대한매일신보사에 송금하는 등 국내에서의 구국계몽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동인학보≫의 창간호 내용을 보면 동인회 취지서와 축사가 서두에 나오고, 이어 논설 9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 하구용(河九鎔)의 <고아청년제군 告我靑年諸君>, 김진용의 <영웅은 하인(何人)이며 여(余)는 하인인고> 등의 글에서 계몽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학해(學海)’란에는 법률·상무(尙武) 교육 등을 비롯한 위생과 동식물 등에 관한 학술적인 내용이 실려 있으며, ‘잡찬(雜纂)’란에는 학회의 활동 상황과 회원들에 관한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1909년에 일어난 유학생단체통합운동으로 대한흥학회에 흡수, 발전적 해체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동인학보』 창간호(대한동인회, 1907.7.)
집필자
윤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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