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823.5m. 현재 문지(門址) 및 수구문지(水口門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일명 도당(陶唐)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김유신(金庾信)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하며 또는 김유신이 무술을 연마하고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루아침에 성을 쌓았고,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하여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과 같이 주둔하였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은 둘레가 1,836척이며 우물이 2개 있었으나 당시는 폐정되었다고 한다. 성내에는 김유신의 사당인 길상사(吉祥祠)가 있으며, 성터의 우물 2개도 남아 있다.
이 중 왼쪽 우물은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지만, 모양이 일부 변경되어 삼국시대의 모습과는 다르다. 길상사의 수구쪽에는 문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곳에 삼문(三門)이 세워져 있다.
1975년 길상사를 중건할 때 입구의 왼쪽에서 높이 2.4m, 너비 1.9m의 석루지(石壘址)가 발견되었으나 조경공사로 다시 묻혀버렸고, 성 안에서는 망대(望臺)가 발견되었다. 현재 성 안에는 백제 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왓조각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