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리왕 때 지은 작자 미상의 가악. 가사는 전하지 않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5년조와 ≪삼국유사≫ 노례왕조에 작품명과 짧은 설명이 전한다.
≪삼국사기≫에는 “이 해에 민속이 환강하여 <도솔가>를 처음으로 지으니, 이것이 가악의 시초였다(是年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라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도솔가를 처음으로 지으니 차사사뇌격이 있다(始作兜率歌 有嗟辭詞腦格).”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악명인 ‘도솔가’의 뜻이나 차음(借音)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텃노래[國都歌]의 뜻으로 ‘돗놀애’ 또는 ‘두(도)리놀애’로 풀이하거나 ② 제신가(祭神歌)의 뜻으로 ‘덧소리’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③ <돌아악 突阿樂>의 동명이사(同名異寫)로서 후렴의 특징을 따라 붙인 ‘ᄃᆞᆯ이놀애’라는 견해도 있고, ④ 신악(神樂)의 성격을 지닌 ‘도살푸리’·‘살푸리’와 관련짓기도 한다.
한편 ‘도솔’을 ⑤ 환강(歡康)의 뜻인 ‘두리’로서 동이악(東夷樂)의 이름인 ‘조리(朝離)’·‘주리(侏離)’의 다른 차자식(借字式) 표기라는 설도 있으며, ⑥ 두레노래[農樂]의 원류로서 ‘두률’, 혹은 ⑦ 소생(蘇生)·재생의 뜻인 ‘도살놀애’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밖에 ⑧ 치리(治理)·안민(安民)의 노래로서 ‘다ᄉᆞᆯ놀애’로부터 왔다는 설과 ⑨ 일본에 전해진 고려악무인 ‘도리소[鳥蘇]’와 같은 신악(神樂)으로 ‘도릿소리’라는 여러 풀이가 있다.
장르에 관해서는 차사사뇌의 격조가 ‘있다[有]’는 표기에 따라 향가의 하위 장르인 사뇌가(詞腦歌) 장르에 포함된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뇌가 장르와는 다른 독립적 장르로 보는 설도 있다.
형식에 대해서도 사구체설, 육구체설, 십구체설(사뇌가인 三句六名體), 한 구가 여섯 단어로 이루어지고 여음을 가진 <정읍사>형식설 등이 있다.
그리고 사뇌가 삼구에 있어서 전구나 중구의 끝에 감탄어미를 붙여 시상(詩想)을 분절하되, 후구 부분에 해당되는 구에 가서는 후구 대신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여음구(餘音句)를 넣고 이어나가던 연장체(聯章體) 장행의 노래 형식설을 갖는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혹은 삼구육명의 사뇌가 형식과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지만 차사가 개입되는 형식적 장치와 노래의 의미단락이 세 개의 구조적 단락으로 짜여진 정도의 형태일 것고 보기도 한다.
내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상의 차이를 보인다. 왕의 어진 정치를 찬송한 것이나 민속환강을 노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송축한 것, 부족연맹국가의 건설에 따른 국가이념과 연맹국간의 자율적 조화 및 연맹국의 무한한 발전을 염원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악장문학이 가지는 찬미하고 경계하는 양 측면을 모두 지닌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았거나 백성의 환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을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문학사적 위치에 관해서는 두 사서(史書)에서 ‘시제(始製)’·‘시작(始作)’이라는 말로 <도솔가>를 강조하고 있는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는 견해들이 있다.
①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가로 보는 견해, ② 상고(上古)의 순연한 종교적 의식의 축사(祝詞)와 근고(近古)의 서정요의 중간 형식으로 보는 견해, ③ 그때까지 전래해온 주교적(呪敎的)·집단적인 것이 아닌 새로운 서정적 민요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④ 낡은 가악인 신요(神謠)에서 종교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순수하게 민중의 환강이라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갖춘 가요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⑤ 동양적 예악사상에 입각해 의도적으로 제작되어 궁중의례에서 연주된 최초의 정풍(正風)가악에 사용된 노래로 보는 견해가 있다.
⑥ 왕이 친제(親祭)하였던 국행제의(國行祭儀)에서 불려진 제악(祭樂)으로서 왕가가 제정한 최초의 가격(歌格)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 외에 ⑦ 국가의 기반을 수립하는 시기에 야기된 여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거행된 제의 곧 민속환강을 구하는 기축(祈祝)의 제의에 쓰인 최초의 가악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