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말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뒤, 조사지역 인근에 이전해 복원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고인돌 3기와 제사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크게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으로 구분된다. 전남지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집중적인 고인돌 분포지대이며, 고인돌은 대부분 바둑판식에 속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대체로 상석 또는 개석 및 적석부를 포함한 지상부와 지하 주체시설인 하부구조로 구분된다.
한편, 고인돌의 조사 예가 증가하면서 일부 부석으로 된 묘역시설, 즉 ‘부석부가 고인돌[敷石附加支石墓]’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1호와 2호는 부석부가 고인돌로서 무덤칸인 하부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제3호는 무덤칸이 없는 고인돌[無石槨式支石墓]이다. 부석부가 고인돌은 석곽 위에 1매의 판석을 덮고 그 위에 상석이 얹혀진 구조로서 지표면에 부석이 돌려진 형태로 신성역인 묘역을 나타내는 기능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지표에 부석이 부가된 고인돌은 황주 심촌리 긴동·신대동·천진동, 한강유역의 춘천 중도, 경상남도 창원 덕천리, 사천 소곡리 등 낙동강 서남안, 전라남도지방의 나주 판촌리, 보성 죽산리, 여천 월내동·평려동 등에서 확인되고 있어 그 분포범위가 넓은 편이다.
반면 무덤칸이 없는 고인돌은 전라남도지방의 곡성 현정리, 화순 만연리, 장흥 충열리 유적 등에서 조사되어 점차 그 예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유형의 고인돌이 어떤 기능을 갖는 것인지 또는 고인돌과는 다른 유적의 범주로 인식해야 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제사유구는 고인돌의 축조와 함께 행해지는 매장의례과정에서 이루어진 파의식(破儀式)의 결과로, 당시 사람들의 신앙행위와 관계된 신성한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간돌검[磨製石劍], 숫돌,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되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