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9책. 목판본. 1660년(현종 1)에 손자 기수(岐壽)에 의해 부록을 합한 본집 6권 5책이 처음으로 간행되고, 1852년(철종 3)에 후손 기필(夔弼) 등에 의해 속집 3책을 포함한 9권 8책이 복간되었다. 그 뒤 1817년(순조 17) 별도로 연보 1책이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완성을 보게 되었다. 권두에 조경(趙絅)·허목(許穆)의 서문, 정홍경(鄭鴻慶)의 중간서(重刊序)가 있고, 속집 권두에 김흥진(金興振)의 서문, 권말에 권대긍(權大肯)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본집은 권1에 시 374수, 권2에 기 5편, 서(序) 11편, 발 5편, 문(文) 2편, 제문 2편, 전(傳) 2편, 서(書) 9편, 논 4편, 권3에 소차(疏箚)·계(啓) 30편, 행장 3편, 권4에 비명 4편, 묘갈 8편, 묘지 8편, 보유 1편, 부록 권1에 허목(許穆)과 조경이 쓴 저자의 행장과 시장(諡狀), 권2에 저자가 남원부사·경상감사 등을 제수받을 때 임금이 내린 교서, 그리고 죽은 뒤에 내린 치제문(致祭文)·만사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권1에 시·부(賦)·서(書)·소, 권2에 전(傳)·기·서(序)·묘갈·행장·제문, 권3에 부록이 실려 있다.
소차의 「갑인봉사(甲寅封事)」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인륜 도리에 어긋났음을 지적하고, 그 가해자인 당시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수(斬首)하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독계(獨啓)」는 창덕궁에 기거하던 광해군이 요망한 말에 현혹되어 정릉궁(貞陵宮)으로 돌아가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올린 글이다.
「척화소(斥和疏)」는 정묘호란 때 올린 것이며, 「척호사소(斥胡使疏)」는 금사(金使) 용골대(龍骨大) 등이 올 때 이를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타의 소차는 대부분 사직(辭職)에 관한 것들이나 인조반정, 대북(大北)·소북(小北)간의 정권투쟁 등 당시 정치정세 등이 일부 지적되어 있다.
이 책은 특히 역사적인 측면에서 당시 권력 투쟁 및 당쟁, 호란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