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6569㎡. 이 절터는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백제시대의 군수리사지(軍水里寺址)가 있고, 북쪽으로도 역시 백제시대의 절터인 정림사지(定林寺址)가 있어 이들 백제시대의 절터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8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터의 규모가 부분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사찰건물의 배치를 보면, 중문(中門)·금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회랑은 강당의 좌우에 마련된 건물에서 남쪽으로 뻗어 중문에 연결되었다.
각 건물 기단터[基壇址]의 규모를 보면, 금당의 경우 동서 100척(약 30m), 남북 70척(약 21m), 강당은 동서 174척(약 52m), 남북 70척(약 21m), 문은 동서 56척(약 17m), 남북 40척(약 12m), 회랑은 남북길이 220척(약 67m), 폭 23척(약 7m)의 규모로 밝혀졌다.
강당의 좌우에 있는 건물터는 종루(鐘樓)·경루(經樓)의 터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절터에서는 탑이 있었던 흔적이 없으며 또 금당과 중문 사이, 금당과 강당 사이가 같은 간격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중요유물로서는 납석제불상파편(蠟石製佛像破片) 2점, 금동불상파편(金銅佛像破片) 1점, 기타 여러 문양 형태의 막새기와편·청동편 등이 있는데, 이 중 납석제불상편은 약 6㎝에 지나지 않으나 일본 호류사(法隆寺) 몽전(夢殿)에 있는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또, 출토된 막새기와류는 군수리사지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 절들은 같은 시기인 백제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