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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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북한 평양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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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양시 역포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의 사당.
내용

평양의 성문 밖에 위치한 숭령전(崇靈殿)에 있었다. 1725년(영조 1)에 사액하고 2월과 8월에 향사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제수(祭需)를 국가에서 지급하였다. 제의는 국왕이 친히 지내도록 되어 있으나, 관찰사가 대행하였다.

집사 중 장찬(掌饌, 제향에서 제물을 담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집준(執尊, 제향에서 술 담는 그릇을 관장하는 사람)·집사(執事)·찬자(贊者, 제향 때 진행 절차를 알려주는 사람)·알자(謁者, 제향 때 여러 향관들을 인도하는 사람)는 지방의 유생이 맡고, 헌관은 관찰사와 지방의 수령 이상이 맡도록 하였다.

찬품(饌品)은 10변(籩)·10두(豆), 조(俎) 2, 보(簠) 2, 궤(簋) 2, 등(㽅) 3, 형(鉶) 3, 잔[爵] 3, 희준(犧尊) 2, 상준(象尊) 2, 산뢰(山罍) 2, 폐(幣)는 흰모시 18척, 속의(續儀) 11척 6치 7푼을 사용하였다. 1460년(세조 6)세조가 세자를 거느리고 평양을 순시한 뒤 친제하였고, 1765년영조가 친제한 일이 있다.

참고문헌

『춘관통고(春官通考)』
집필자
권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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