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분류군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동물학은 대상으로 하는 속성이나 분류군에 따라 여러 가지 분과로 나뉜다.
동물의 속성에 따른 분과로 비교적 일찍부터 성립된 것은 동물분류학·동물해부학·동물발생학·동물생리학·동물생태학·동물지리학·동물조직학·동물세포학·동물유전학 등이고, 비교적 새로운 것에는 동물심리학·동물행동학·동물사회학 등이 있다.
분류군에 따라서는 척추동물학·무척추동물학·포유류학·조류학·파충류학·어류학·연체동물학·곤충학·갑각류학·원생동물학 등 여러 가지 분과가 성립되어 있으며, 화석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고동물학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동물의 어떤 분류군의 어떤 특정한 속성을 대상으로 하여 어류생리학·조류생태학·갑각류분류학 등도 성립된다. 또한 응용분야로서 축산학·수산동물학·수의학·어류양식학 등도 있다.
인류가 어디에서나 그러하였던 바와 같이 우리 조상들도 의식주·의약·농경·어업 등의 생산활동과 관련하여 한반도의 동물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여 왔다.
그 일부는 고려시대에 간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조선시대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동의보감(東醫寶鑑)』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동물학 발전사의 재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17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실학풍의 진흥과 더불어 박물학적인 업적이 나타나게 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는 동물을 조(鳥)·수(獸)·인개(鱗介)·충치(蟲豸)로 분류하고 100여 종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물명고(物名考)』에서는 생물을 유정류(有情類)와 무정류(無情類)로 나누었는데, 동물에 해당하는 유정류는 우충(羽蟲)·수족(獸族)·수족(水族)·곤충(昆蟲)의 4무리로 나누어 각 무리에 속하는 것들의 한자명과 이명을 적고 간단한 설명을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글명도 적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흑산도의 해산동물 199종류를 인류(鱗類)·무린류(無鱗類)·개류(介類)·잡류(雜類)로 나누고 각 종류에 대한 한문명과 속명(이두문식으로 적음.)을 적고 특징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재하였다. 이 저서는 한 지방의 동물상을 실제 관찰에 의거, 상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유례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동물분류학에 관계되는 적지 않은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동물명을 한문 위주로 쓰고 분류 방식도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따르고 있어 현대분류학에서 인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이 현대적 동물분류학과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분류학이나 기타 분과에서도 우리말 동물명이 절대 필요한데, 그 기본적인 것들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것이고, 우리 국토의 동물에 대한 인식도 조상들의 인식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현대적 동물학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마련된 신교육제도와 관계가 있다. 즉, 1895년에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소학교 고등과의 학과과정 중 이과(理科)에서 동물학을 다루게 되었고, 한성사범학교관제 공포(1895년)와 중학교관제 공포(1895년)에 따라 그 학과과정에 광물·식물·동물·생물·생리·위생을 다룬 박물학을 포함시킨 것이다.
1908년에는 농상공학교관제가 공포되었는데 농과에서는 동물학에 관한 것도 가르쳤다. 그 뒤 소학교는 보통학교로(1906년), 중학교는 고등학교로 되었다가(1906년) 고등보통학교(1911년)로 되었는데, 여전히 동물학을 이과와 박물학에 포함하여 가르쳤다.
1905년 이후에는 교과용 도서편찬도 시작되어 『신편박물학(新篇博物學)』·『중등생리학(中等生理學)』·『보통동물학교과서(普通動物學敎科書)』와 같이 동물학을 다룬 교과서도 나오게 되었다. 1922년의 대학령 공포에 따라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개설되자 학과과정에 식물학 및 동물학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각급 학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물학에 관한 지식이 학교교육을 통하여 많이 보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생물학의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할 생물학과는 설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희망자는 외국에 유학하여 동물학 분야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의경(李儀景:일명 李彌勒)은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독일로 망명하여 뮌헨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1928년에 「플라나리아의 재생에 관한 연구」로 동물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귀국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사람은 김호직(金浩稙)과 강영선(姜永善) 2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동물에 관한 연구는 1910∼1945년 사이에는 일본인들이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때는 주로 일본산 동물의 연구에 곁들여 우리 나라산 동물을 다루었고, 우리 나라의 동물만을 다룬 논문은 소수였다. 연구대상이 된 분류군도 척추동물의 각 강(綱), 연체동물·절지동물 등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실제 연구활동을 한 우리 학자는 조복성(趙福成, 곤충)·원홍구(元洪九, 조류)·석주명(石宙明, 곤충)·정문기(鄭文基, 어류)·백갑용(白甲鏞, 거미) 등 수명에 불과하였고, 한국인으로 가장 먼저 논문을 발표한 사람은 조복성과 원홍구였다.
학회로는 1923년 조선박물학회가 창립되었는데, 그 주역은 역시 일본인이었고 학술지인 『조선박물학회잡지』에 실린 논문은 분류학에 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946년 미군정법령으로 「국립서울대학교설치령」이 공포되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최초의 생물학과가 신설되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동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뒤 신설대학의 증가에 따라 신설 생물학과의 수도 증가하고 생물학도의 수도 증가해 가면서 동물학은 종전의 분류학 일변도 경향에서 차차 벗어나 연구분야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그 동안 외국에 유학하여 생물학에 관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하고 귀국한 학자들이 증가하였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대학의 대학원에 석사 및 박사과정이 마련되어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1945년 광복 이래 전자현미경·주사전자현미경·조직배양기기·전기영동장치·컴퓨터·자동DNA염기서열분석기(automatic DNA sequencer) 등의 기기와 이것들에 따른 기법이 생물학 연구에 많이 쓰이고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급진전해 온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에서도 그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또한 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되고(1967.1.), 과학기술처가 설립된(1967.4.) 뒤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연구보조금이 점차 증가하다가 1990년대에는 대폭 증액됨으로써 연구활동이 촉진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은 유전공학육성법 제정(1983.12.)에 힘입어 크게 촉진되었는데 이는 분자생물학이 유전공학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분자생물학은 동물학의 많은 분야에 파급되었다.
동물분류학 분야에서 1945년 8·15광복 이후 한국에서 전통적 동물분류학(알파분류학)이 꾸준히 발전하여 왔던바, 그 성과의 한 표현이 1959년부터의 『한국동식물도감』의 출판이었다. 1998년까지 38권이 나왔는데 그 중 동물관계는 1979년까지 나비류를 비롯한 15권, 그 이후에 조류생태를 비롯한 9권이 나왔다. 또한 동물명집의 발간이 있었다.
『한국동물명집』「곤충편」(1968)에 4,700종, 「척추동물편」(1970)에 1,412종, 「무척추동물편」(곤충 제외) (1971)에 1,675종, 『한국곤충명집』(1994)에 1만991종, 『한국동물명집 곤충 제외』 (1997)에 척추동물 1,522종, 무척추동물 5,675종이 수록되어 있다. 그 동안 무척추동물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알파분류학의 발전과 더불어 1980년대 초부터 아이소자임의 분석에 의한 집단의 변이와 종분화 문제가 많이 연구되어 왔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분자계통분류학이 도입되어 발전되고 있으며, 수량분류학과 분지분류학도 도입되었다. 동물생리학 분야는 일찍부터 연구되어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발표 논문 건수가 가장 많다.
1980년대부터는 근세포 분화 생리의 연구가 지속해 왔고, 1970년대 중반부터 생식생리의 연구가 급진전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전자현미경이 도입, 보급되면서 동물체의 미세구조를 밝혀 왔으며 그 이용 분야가 다양해졌다.
세포학 분야는 1945년 이전부터 이 분야를 전공하고 1960년대 초에 조직배양법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한 강영선 박사의 주도하에 지속적 발전을 하였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는 분자생물학과 유관하게 세포생물학으로서 크게 발전해 왔다.
유전학 분야에서는 1950년경에 태동한 초파리 유전학이 1960년경부터 발전을 거듭하여 유전학계의 주류를 견지해 왔고, 한국인 인류유전학도 1960년대 초부터 지속적인 발전을 해 오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는 분자유전학적 연구도 진행되었다. 근래에 유전자 복제, DNA의 염기서열분석 등 유전자 조작을 사용하는 분자생물학이 발전하고 있다.
발생학 분야에 있어서는 우선 1959년 이래 김창환 박사의 주도하에 곤충의 배후(胚後)발생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유미양서류의 발생 연구가 진척되었다. 1980년대 전후부터 갑각류의 유생발생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었다.
생태학 분야에서는 1960년대에 간석지의 이매패류의 생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가 중단된 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1980년대 초부터 환경, 특히 수질오염에 관련된 생태학적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1990년대에는 삼림 토양 내의 미소동물에 관한 것이 눈에 뜨인다. 1990년대 초부터 동물행동학이 도입되어 연구되고 있다.
앞으로의 동물학 분야에서는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일층 더 강화되어야 하고 이미 도입된 분야들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도입 분야도 육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제적인 과제인 생물다양성 유지에 관한 연구와 21세기를 주도할 산업의 한 분야인 생명공학에 관련된 기초 동물학 분야의 연구, 특히 한국인과 한국산 동물의 유전체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동물복제 연구에도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1997년 11월 현재 동물학과 관계가 깊은 학회로는 한국동물학회(1957년 창립)·한국곤충학회(1970)·한국동물분류학회(1984)·한국어류학회(1989)·한국육수학회(1976)·한국유전학회(1978)·한국분자생물학회(198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