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화력발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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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화력발전소 옛 터
마산 화력발전소 옛 터
산업
지명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구 마산시 해운동)에 있던 시설용량 5만㎾의 무연탄 및 중유혼소 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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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구 마산시 해운동)에 있던 시설용량 5만㎾의 무연탄 및 중유혼소 화력발전소.
내용

1956년 4월 전력 생산을 개시한 이래 약 26년간 영남지역 전력공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오다가 설비 노후로 1982년 12월 31일 폐기되었다.

9·28수복과 더불어 미국원조에 의하여 전화복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전력수요가 급증하였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전원개발의 첫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2만 5,000㎾급 용량의 발전설비 4기를 건설하기로 한·미 양국이 합의하여 1954년에 미국의 대외활동본부(F.O.A.)의 원조자금 3,000만 달러와 내자 7억 2,000만 환 등 총 61억 2,000만 환의 공사비로 건설사업이 추진되었다. 이 발전소는 이들 4기 중 2기가 설치된 발전소이며, 1954년 10월 15일 착공하여 1956년 4월 15일 준공되었다.

준공 뒤 1년간 설비제작사인 미국의 벡텔회사(Pacific Bechtel Co.)가 운영권을 감독하며 국내 운전원을 훈련시켜왔으며, 1957년 9월 12일에 조선전업주식회사(朝鮮電業株式會社)가 운영권을 인수하였고, 다시 1961년 7월 1일 전력3사 통합으로 발족된 한국전력주식회사(지금의 한국전력공사)가 인수하였다.

이 설비는 당시 세계에서도 신식 설비에 속하는 기력발전설비로서 중유전소 또는 무연탄(90%) 및 중유(10%)를 혼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 발전소의 건설과 함께 국내 전력구조는 수력발전소 중심에서 화력 및 수력발전 등분구조로 되었다.

또한 이 발전소는 6·25전쟁 뒤의 전력난 해결을 위하여 단시일내에 건설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나라 화력발전기술 향상면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국내 무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함으로써 기존 화력발전소가 겪고 있던 석탄부족에 따른 발전제약을 받지 않음은 물론, 국내 광업개발 및 이 분야 종사자의 고용효과면에서도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전력20년사』(한국전력공사, 1981)
『전기연감』(한국전력주식회사, 1967∼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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