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시중(施中). 좌의정 맹사성(孟思誠)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맹세형(盟世衡)이고, 아버지는 승지 맹주서(孟胄瑞)이며, 어머니는 홍처심(洪處深)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현종의 딸인 명선공주(明善公主)와 약혼을 했다가 1672년(현종 13)에 공주가 사망하자 신안위(新安尉)에 봉해졌고, 이듬해에 사헌부의 건의로 이미 받았던 봉작이 환수되었다.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음보(蔭補)로 의금부도사·사복시주부를 지내고 1698년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언관직을 거쳐 1702년에 사서·문학을 역임하고, 이듬해에 강원도감진어사(江原道監賑御史)가 되었다. 1704년에 사간·동부승지·황해도관찰사를 지내고 2년 뒤에 대사간이 되었다. 1708년에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이듬해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선정(善政)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지리에 능통했고,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안진경(顔眞卿)과 유공권(柳公權)의 체를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