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출신. 태조 왕건(王建)이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즉위할 때 그의 정치적 입장은 친왕건파였다. 태조가 즉위한 직후에 청주지방의 호족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것에 대비하는 정책을 펼 때인 918년(태조 1)에 명길은 능달(能達)·문식(文植)과 함께 청주출신의 재경세력(在京勢力)으로서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청주에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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