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48∼53. 일명 ‘막래(莫來)’이며, 이름은 ≪삼국사기≫에는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에는 ‘해(解)’를 성으로 보아 ‘애류(愛留)’ 또는 ‘우(憂)’라 하였다.
제3대 왕인 대무신왕의 원자(元子)로 태어나 서기 32년(대문신왕 15) 12월에 태자로 책립되었으나 왕이 죽자 아직 태자가 어리다 하여 대무신왕의 동생인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뒤 민중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유사≫에는 모본왕이 민중왕의 형이라 하였다.
모본왕은 성품이 사납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한을 사 마침내 재위 6년 만에 신하인 모본인(慕本人) 두로(杜魯)에게 피살되어 모본원(慕本原)에 장사지냈다. 대외적으로는 49년(모본왕 2)에 한(漢)나라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에 쳐들어간 사실이 있다.
즉위년 10월에 왕자 익(翊)을 태자로 책립하였으나 모본왕이 죽은 뒤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인 궁(宮)이 제6대 태조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런데 궁의 성은 고씨(高氏)이므로 모본왕을 마지막으로 하여 소노부(消奴部) 출신의 유리왕계의 해씨왕시대(解氏王時代)는 끝이 나고 계루부 고씨(桂婁部高氏)의 왕위계승권이 확립되었다고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