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은 정5품 하계(下階)이다. 원나라의 무산계이지만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관직과 함께 고려인에게도 수여되었다. 최초의 사례는 1269년(원종 10) 무렵 김부윤(金富允)이 정동행성 이문소관(理問所官)에 임명되면서 이 무산계를 수여받은 것이지만, 이 때는 아직 정동행성이 설치되기 전이므로 기록상의 오류로 보인다.
이후 1280년(충렬왕 6) 다음 해에 있을 제2차 일본원정을 앞두고 원정에 참여하는 박지량(朴之亮) 등 고려군 지휘관 10명이 원으로부터 무덕장군 관군천호(管軍千戶)에 임명되고 금패(金牌)와 인장(印章)을 받았다.
이 밖에 충렬왕 때 정인경(鄭仁卿)이 정동행성 이문관으로, 김연수(金延壽)가 서경등처관수수군만호부(西京等處管水手軍萬戶府) 부만호로 임명되면서 이 무산계를 띠었고, 충숙왕 때 원충(元忠)이 서경등처관수수군만호부 만호, 홍융(洪戎)이 전라도진변만호부(全羅道鎭邊萬戶府) 만호로서 무덕장군이 되었던 것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