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잡고』와 『수구집』 · 『구봉집』의 책판은 모두 352판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무산사(武山祠) 내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주세붕의 시문집 『무릉잡고』는 그의 아들 주박에 의해 1564년에 원집(原集)이 간행되고, 1581년에 별집(別集)이 간행되었으나, 그 목판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270여 년 후 1851년(철종 2)에 그의 후손이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에 보존되어 있던 인본(印本)과 문중에서 전래되어 오던 초고를 대조하여 누락되거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여 칠원(漆原, 지금 함안에 병합되었음)의 덕연서원(德淵書院, 함안군 칠원면 무릉리 소재)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1908년 시재(時在) · 시범(時範)이 주동이 되어서 부록을 추각하여, 『무릉잡고』 책판은 부록까지 모두 네차례 간행되었다. 원집 8권, 별집 8권, 부록 4권, 총 20권 11책으로, 1959년에 석판(石版)으로 속집(續集) 4권이 간행되었다.
『수구집』은 주세붕의 손자인 주맹헌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이다. 이 책판은 『구봉집』을 간행할 때 함께 판각한 것인데, 서문은 1906년 장석영(張錫英)이 썼고, 발문은 후손 주학경(周鶴璟)이 썼다.
『구봉집』은 주박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으로, 1908년 『무릉잡고』 부록을 간행할 때 함께 판각한 것이다. 서문은 1906년에 김도화(金道和)가 썼고, 발문은 이만도(李晩燾)가 썼다.
주세붕과 아들, 손자 삼대에 걸쳐 문집의 목판이 남아 있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다. 특히 주세붕은 유학을 교화(敎化)의 방도로 보아 그 보급에 힘을 쏟았고, 또한 조선 최초로 서원을 창설하여 이후 조선에서의 유학의 지위와 세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집은 동시대의 여타 문인들에 비해서 비교적 완비된 체제를 갖추고 있어, 당시의 정치, 사회 등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합천에서 태어나 에서 성장한 그의 문집에는 이 지역과 밀접한 관계 있는 자료가 많아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 자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