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영산강을 건너 나주시, 서쪽은 신안군의 많은 도서에 면하고, 남쪽은 목포시, 서북쪽으로는 깊게 만입된 함평만을 사이에 두고 영광군 ·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경 126°15'∼126°32', 북위 34°44'∼35°08'에 위치한다. 면적은 446.94㎢이고, 인구는 8만 223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6개 면, 416개 행정리(10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에 있다.
노령산맥의 한 지맥이 비옥한 나주평야를 지나 전라남도의 서남단에 무안반도(務安半島)를 형성하였고, 다시 여기서 갈라져나간 해제반도(海際半島)와 망운반도(望雲半島)가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220.3㎞에 달한다.
육지나 도서를 막론하고 높이 400m 이상의 산지는 없으며, 승달산(僧達山, 318m) · 국사봉(國師峰, 283m) · 감방산(坎方山, 258m) 등의 산과 낮은 구릉 및 평지로 이어져 있다.
하천으로는 몽탄천(蒙灘川) · 남창천(南倉川) · 제왕천이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하천이 15개 정도 있으나 특별히 발달한 하천은 없고 영산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해안은 침강해안으로 굴곡이 심하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데다 바다가 멀리까지 얕기 때문에 항만의 발달에 불리하다. 연안에 2개의 유인도와 25개의 무인도가 있다.
한반도 남서쪽 해안에 위치하므로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나타낸다. 연 평균기온 14.0℃, 1월 평균기온 1.0℃, 8월 평균기온 26.1℃이며, 연 강수량은 1,483㎜이다.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영산강과 해안선 주변에서 출토된 뗀석기와 반달돌칼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전군지역(全郡地域)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과 몽탄면에서 출토된 반달돌칼 등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지역에 이미 선사시대의 정치기구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상정되나, 마한의 고지(古地)로서 여러 소국 중 어느 국가의 영토였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백제의 영역에 포함된 것은 369년(근초고왕 24)으로 나타나지만, 완전한 정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사창리의 옹관묘를 비롯해 망운면 · 운남면 · 삼향읍 · 해제면 등지의 옹관묘 · 석실분 등이 백제문화계통과 크게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백제 때는 물아혜군(勿阿兮郡)으로 불렸고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무안군으로 고쳐졌다. 그리고 함풍현과 다지현 · 해제현 · 진도현 등 현재의 함평과 진도지역까지 영속지로 관할하게 되었다. 892년(진성여왕 6) 견훤(甄萱)이 건국한 후백제의 영역이 되었으며, 909년(효공왕 13) 왕건(王建)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뒷날 고려 건국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견훤의 군사를 격파했다는 파군교(破軍橋)의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944년(혜종 1) 물량군(勿良郡)으로 개칭되었다. 이는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吳氏)의 출신지가 이곳이었다는 사실이 작용했던 것 같다. 991년(성종 10) 다시 무안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나, 나주군의 속군으로 예속됨으로써 신라시대에 비해 그 영역과 기능이 크게 축소되었다. 1172년(명종 2)에 이르러 비로소 감무(監務)를 파견하게 되었고, 1391년(공양왕 3)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는 조처로서 성산극포권농방어사(城山極浦勸農防禦使)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처음으로 현감을 두었다. 세종대에 읍성이 정비될 때 정한 행정편제나 영역이 거의 고정되어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이때의 가구는 315호, 인구는 1,030명(남정만의 수)이었다.
한편, 대굴포(大掘浦)에 전라수군처치사를 설치, 24척의 전선과 1,895명의 선군(船軍)을 배속했고, 목포만호와 다경포만호에 각각 8척의 전함과 490여 명의 선군이 주둔하였다. 세조대의 진관체제 하에서는 대굴포의 수군처치사영이 해남으로 옮겨가 우수영이 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 고장 주민들은 보평산전투를 통해 왜군의 침입을 저지하였다.
1895년 관제개혁 때 나주부 예하의 무안군이 되었고, 1896년 도서지방이 지도군(智島郡)으로 분리되었다. 1897년 10월 목포진의 개항으로 이곳에 감리서(監理署)가 설치되자 무안군도 부로 승격, 청사를 목포로 이전했고 부윤이 감리를 겸임하였다.
1903년 7월 목포감리서가 따로 설치되자 무안부는 다시 무안군으로 강등되었다. 1906년 다시 무안부로 승격하고 감리가 폐지되어 부윤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때 함평군의 다경면 · 해제면, 영광군의 월경지인 망운면 · 다경면, 나주군의 월경지인 망운면 · 삼향면을 편입하였다.
1910년 목포부로 개칭하여 무안의 명칭이 없어졌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시 분리하여 목포부와 무안군으로 독립하였다. 그 해 지도군 일대와 완도군의 팔금면, 진도군의 도초면이 편입되었고, 이후 이들 도서지역의 분할 이속이 빈번하게 반복되었다. 1939년 성곡면을 몽탄면으로 개칭하였다.
무안지역은 동학운동이 상당히 활발했던 곳으로 배상옥(裵相玉) · 최장현(崔壯鉉) 등이 접주(接主)로 활동하였다. 한말의 의병투쟁에는 김익수(金益洙) · 박임상(朴琳相) · 박집중(朴執中) 등의 의병장들이 두드러지게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성남리 만창(萬昌)마을에서 김순기(金淳基) · 정신섭(丁信燮) · 박용규(朴溶奎)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는 전라남도의 만세운동을 선도한 것이었다.
1957년 면성면(綿城面)을 무안면으로 개칭하고 1963년 이로면을 폐지해 일부는 목포시에, 일부는 삼향면에 이관시켰다. 1969년 도서지방을 신안군(新安郡)이라 하여 분리, 독립시킴으로써 군의 영역이 육지부의 8개 면으로 줄어들었다.
1979년 무안면이, 1980년 일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운남출장소가 면으로 승격하고, 삼향면 지산리 일부가 청계면 월선리로, 현경면 평룡리와 청계면 사마리 일부가 무안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에는 삼향면 옥암리 · 대양리가 목포시로 편입되었고, 1992년에 현경면 양학 3·4리가 무안읍에 편입되어 신학 1·2리가 되었다. 2009년 삼향면 남악리를 신설하였고, 2011년에 삼향면이 삼향읍으로 승격되었다.
일로읍 광암리 · 월암리 · 감돈리, 현경면 평산리, 청계면 청천리 · 서호리 등지의 고인돌을 비롯해 청계면 도림리 · 청천리 등지의 선돌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일로읍 광암리 노루바윗재 고인돌에서는 홈도끼 · 방추차 · 민무늬토기조각이 나왔고, 몽탄면 내리에서는 반달돌칼이, 해제면 광산리 및 몽탄면 명산리와 무안읍 매곡리에서는 돌도끼 · 돌검 ·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운남면 성내리 당암마을에 있는 조개더미는 철기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것으로는 해제면 신정리, 몽탄면 사창리에서 옹관묘와 토광묘가 발견되고 해제면 신정리, 몽탄면 사창리, 청계면 남안리에서는 석실고분이 발굴되었다.
산성으로는 무안읍 고절리 · 용월리 일대에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면주성(綿州城, 일명 普平山城)이 있다. 이 밖에 무안읍 성남리의 공수산성(控壽山城, 일명 務安城), 성내리의 다경진성(多慶鎭城), 해제면 임수리의 임치진성(臨淄鎭城) 등이 있는데, 현재는 모두 석성의 극히 일부 또는 성곽의 잔재만 남아 있다. 봉수대는 삼향읍 왕산리, 청계면 강정리, 해제면 신정리 등에 남아 있다.
불교 유산으로 무안읍 성동리에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무안약사사석불입상이 있다. 사찰로는 몽탄면 달산리의 법천사 목우암(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목우암삼존불(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청계면 청천리의 마곡사(麻谷寺), 무안읍 성암리의 도덕사(道德寺) · 미륵사(彌勒寺) · 남악사(南岳寺), 해제면 신길리의 원갑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무안읍 교촌리에 무안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와 송림서원(松林書院)이 있었으나 송림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이 밖에 최익현(崔益鉉)과 기우만(奇宇萬)을 배향한 현경면 평산리의 평산사(平山祠), 운남면 연리의 충효단(忠孝壇)과 동암리의 사도세자제당(思悼世子祭堂, 일명 東巖廟), 무안읍 고절리의 병산사(柄山祠), 몽탄면 사창리의 우산사(牛山祠) 등이 있다.
장승으로는 몽탄면 대치리에 총지사지석장승(전라남도 민속문화재, 1987년 지정) 2기가 있다. 그리고 법천사석장승(전라남도 민속문화재, 1987년 지정) · 법천사목우암 · 무안성남리석장승(전라남도 민속문화재, 1987년 지정)등이 남아 있다.
중요건물로는 삼향읍 유교리의 무안 유교리 고가(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무안읍 성동리의 무안정득수가옥(務安丁得洙家屋), 매곡리의 무안박봉기가옥(務安朴鳳基家屋) 등이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무안읍 교촌리의 유산정(遊山亭), 매곡리의 영화정(詠花亭) · 죽헌정(竹軒亭), 몽탄면 이산리의 식영정(息影亭) 등 정자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무안읍에 무안 용월리 백로와 왜가리번식지(천연기념물, 1968년 지정), 청계면에 무안 청천리 팽나무와 개서어나무숲(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다.
기타 국가유산으로는 청계면 태봉리에 인화분청사기 가마터가 있고, 몽탄면 사천리 · 대치리와 해제면 유월리, 그리고 운남면 하묘리에 귀얄분청사기 가마터가 있다. 해제면 송석리의 도리포 해저유물 매장해역은 고려청자가 매장되어 있는 곳으로,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해제면 광산리에 무안발산마을 미륵당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이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1394년(태조 3) 공수산 아래 무안향교가 세워졌다가 1470년(성종 1)무안읍 교촌리로 이전하였다. 교촌리 송림마을에는 1630년(인조 8)에 현감 유시남(兪市南)과 마을 유생들이 협의하여 세운 송림서원(松林書院)이 있다. 이 서원은 광해군 때 폐모의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귀양와서 이곳에서 죽은 김권(金權)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1682년(숙종 8)에 사액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15년무안읍 성내리에 무안보통학교가, 1920년 삼향보통학교 · 망운보통학교 · 일로보통학교가 각각 개교하였고, 1924년 해제보통학교, 1929년 몽탄보통학교, 1930년 청계보통학교, 1938년 현경보통학교가 개교하였다. 1946년에는 무안중학교, 1964년 무안종합고등학교, 1979년 해제고등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1983년 목포시에 있던 목포대학교의 일부가 이전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8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5개교, 한국폴리텍V대학 · 목포대학교 · 초당대학교가 있다.
매년 9월 군이 주관하는 문화행사로 군민의 날 행사가 개최된다. 이는 군민의 상 시상식, 민속놀이 · 농악경연 · 서화전 · 체육행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8∼9월에는 연꽃축제도 한다.
이 고장에 전해 오는 민속놀이로는 남도의 다른 지역과 비슷한 강강술래 · 줄다리기 · 널뛰기 · 농악 등이 있다. 이 지역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활발하게 행해지던 「둥당이타령」 및 길쌈놀이도 있다. 「둥당이타령」은 팔월보름날이나 정월에 부녀자들이 모여 활방구를 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미영(무명)타는 활을 죽 창문에 걸고 활꼭지로 활시위을 퉁기면 둥당둥당 소리가 난다. 또,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두들겨도 비슷한 소리가 난다. 이런 토속적인 간이 악기들의 리듬에 맞추어 “둥당이다 둥당이다 당기둥당이 둥당이다.”라고 하면서 시집살이나 사랑 등을 주제로 하여 노래들을 부르고 춤을 추어대던 흥겨운 놀이이다.
길쌈놀이는 신라 때부터 유래해온 부녀자들의 가장 큰 향연으로, 음력 7월 백중부터 8월 추석까지 한 달 동안 계속된다. 이는 고려와 조선으로 내려오면서 그 열기가 식었지만, 이곳에서는 한때 색다른 사연으로 인해 성황을 이루었다.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직한 김충수(金忠秀)의 부인 금성나씨(錦城羅氏)가 왜적에게 희롱당한 유방을 은장도로 도려내고 순절하자, 그녀의 고결한 정렬을 추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이 나씨가 즐기던 길쌈놀이를 자주 행하고 노래를 애창했다고 한다. 이 놀이는 부녀자 20∼30명이 목화따기 · 씨앗이 · 미영타기 · 고추말기 · 미영잣기 · 베뽑기 · 베날기 · 베메기 · 베짜기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남자들의 놀이로는 공치기놀이가 있다. 옹이가 박힌 굳은 나무를 이용해 어른 주먹의 두 배 크기로 나무공을 깎아 끝이 굽은 지팡이 모양의 자루(이를 꽁매라 함)를 가지고 쳐서 상대편의 문에 넣는 놀이이다. 일정한 규칙이 있어 양편이 서로 정해진 위치에 서고 그 위치를 벗어나면 벌칙이 따른다. 괭이로 선을 그리거나 나무로 울짱을 만들어 낙이라 했는데, 선수들은 이 낙 안에서 놀이한다. 그 밖에 수세미줍기 · 연날리기 등의 놀이가 있다.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당제는 이 고장에서도 지낸다. 특히, 음력 정월보름경 당산에 볏짚으로 줄을 늘어뜨리고 나무나 돌 등의 당산신에게 옷을 입혀 마을의 평화와 질병의 퇴치 또는 풍년을 빌었다.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관에서도 지역적으로 제단을 만들어 지역민의 안위를 빌기도 하였다.
무안읍성 남문 안에 고을 원님이 헌관이 되어 제를 지내던 성황당이 있었다. 대개 제사는 음력 정월에 지내지만 망운면 송현리 두모마을의 해송에게는 마을 입향일인 음력 7월 15일에 제를 지낸다.
전해 오는 민담이나 전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형지물에 관한 전설이 이곳의 토속적인 맛을 더 밀도 있게 담고 있다.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을 연결하는 영산강 하류를 몽탄강(夢灘江)이라 일컫게 된 데는 유래가 있다.
후삼국시대 왕건이 나주성에 웅거한 견훤과 한판 승부를 겨루기 위해 몽탄강 근처 동강면 옥정리 몽송(夢松)마을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견훤의 군대가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포위된 왕건군이 혈로를 뚫고 도망하려 했으나 몽탄강물이 범람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서야 견훤군은 공격을 멈추었다.
이 때 군막에서 막 잠이 든 왕건의 꿈속에 백발노인이 현몽하여 지금 강물이 빠졌으니 강을 건너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꿈에서 깨어 즉시 군사를 강 건너로 옮겨 파군천에 매복시켜 놓았다가 추적해 오는 견훤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이야기이다. 그 뒤 꿈에 현몽을 받아 건넌 여울이라 하여 몽탄(夢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해제면 대사리의 백학산(白鶴山)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고려 말 고씨(高氏)의 속성(俗姓)을 가진 명승이 이 산에 들어와 절을 세우고 수도를 하였다. 어느 해 가뭄으로 온 동리가 아사지경이 되었을 때 한 노인의 간청에 따라 불공을 드려 비를 오게 했으나, 다음 세상에 중들이 수난을 당할 것을 예견하고 상좌들을 피신시킨 뒤 자신은 백학이 되어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한다.
현경면 현화리의 할미바위에 얽힌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이 고을은 여름이면 각다귀 떼 때문에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바다를 지키는 할미신〔女神〕이 각다귀들을 치마에 싸서 바다에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또, 일로읍 청호리의 「상사(相思)바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떤 아름다운 처녀가 굴을 따러 갔다가 만난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청년이 풍랑을 만나 죽게 되자 그 처녀는 날마다 강변에 있는 한 바위에 나가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강에서 구렁이가 나와 처녀를 감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그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이가 나빴던 두 가문의 처녀 · 총각이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는 「승달산전설」, 등천에 실패한 용이 꼬리로 내리쳐 자꾸 낮아졌다는 「감방산전설」, 중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끝내는 돌이 되어 버렸다는 「수암(물바위)전설(水巖傳說)」과 「저승제전설」,「멍수바위전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고 있다.
이 고장의 고유민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노래들이 많이 전한다. 이들은 크게 순수오락적인 민요와 노동요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볼 수 있다. 순수오락적인 민요로는 주로 「강강수월래」 · 「둥당이타령」 · 「도라지타령」 · 「청춘타령」 · 「아리랑타령」 · 「각설이타령」 등이 있고, 노동요로는 「농부가」 · 「김매기노래」 · 「밭매기노래」 들이 전해지고 있다.
「둥당이타령」은 둥당이라는 간이 토속악기와 춤이 곁들여지는 노래로서 이 지방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전한다. “물짓는다고/신죽이나 보내라소/어매어매/각시어매/베잘짜면 뭣한단가/뒤안에 복성 다따먹고/나한쪽도 안주는가/마당가운데 잰 모닥불은/겉이타야 남이알재/내속타듯 속만타고있네그려/시집살이 잘한다고/소문이 났는디/요강단지 씻어서/살강에다 얹었네.”
다음은 이 지방에 전해오는 「잡타령」의 가사이다. “시들시들 봄배추는/밤이슬오기만 기다리고/옥에갇힌춘향이는/이도령오기만 기다리네/얼씨구나 좋다 저절씨구/지화자자 저절씨구/백설같은 흰나비는/부모상복을 입었는가/새벽단장 곱게나 빗고/장다리밭으로 유람가네/얼씨구나 좋다 저절씨구/지화자자 저절씨구.”
또, 「방아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유와 방아야/어유와 방아야/이방아가 뉘방아/강태공의 조작이로다/어유와 방아야/이방아를 지을적에/서른세명 역군들이/낙락장송 베어다가/이방아를 만들었나/어유와 방아야/팔구월 추수하여/우걱지걱에 실어다가/물좋은 수양수출/덜쿠덩 방아찧자/어유와 방아야/덜쿠덩 자주찧어라/점심때가 늦어간다/어유와 방아야/어유와 방아야/들에서 찧게되면/물방아가 좋을시고/집에서 찧게되면/드들방아가 좋을시고/어유와 방아야/호호맵다 고추방아/앞에서 찧은 부인/궁둥이는 너무도크다/어유와 방아야/덜쿠덩덩덩 자주 찧어라/점심때가 늦어간다/어유와 방아야.”
총 경지면적 1만 8261㏊ 중 논이 48.7%를 차지한다. 수리시설로는 몽탄면 달산리의 달산수원지(達山水源地)와 운남면 연리의 양곡저수지(楊谷貯水池) 등이 있다. 둘 다 중심점토식(中心粘土式) 댐으로 축조되었다.
달산수원지는 목포시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수원지 중의 하나로 하루 송수할 수 있는 양은 1만 톤 정도이다. 양곡저수지는 인접해 있는 신기저수지와 함께 양곡 · 신기 · 서촌 마을 일대의 간석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함으로써 벼농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조 · 고구마 · 양파 · 유채 · 시금치 · 마늘 등이 있으며, 특히 고구마 · 양파 · 유채 등은 질이 좋은 특용작물로 손꼽힌다. 이는 토양이 비옥한 사질 및 점토질이고, 무안에서 생산되는 석회비료로 토질을 중화시킬 수 있으며, 병충해가 비교적 적은 까닭에 가능하다.
또한, 무안군은 이웃의 함평군과 경상남도 창녕 · 거창 등과 더불어 전국적인 양파산지로 알려져 있다. 무안의 양파는 전국 재배면적의 24%를 차지하는데 그 중 일부는 한우의 사료로 개발, 특산품화하였다. 또, 마늘 · 양파를 원료로 한 고추장 · 마늘가루 · 마늘편건조 · 건조양파 · 양파장아찌 등 가공식품과 마늘 · 양파가루를 이용한 국수도 개발, 마늘과 양파의 소비를 촉진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농가 소득을 증대시켰다.
고구마는 현경면과 망운면 일대의 해안지방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나는 고구마는 삶으면 밤맛을 내기 때문에 일명 밤고구마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과 · 배 · 포도 · 감 · 복숭아 등 과실류의 생산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망운면 톱머리 단감은 당도가 높아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일로면과 삼향읍, 청계면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굴곡이 심한 반도형의 해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새로운 농경지가 늘어나 곡물농사와 잎담배가 재배되고 있다. 또, ‘영산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영산강 하구언사업이 마무리되어 일로읍과 삼향읍 · 몽탄면 일대의 개펄 1,800㏊가 농경지로 개간되었다. 서해연안에서 양식되는 대엽김 · 피조개 · 새고막 등은 국내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수익성도 높다.
한편, 현경면 · 망운면 · 해제면 등지에서는 세발[細足]낙지가 생산되어 어민들의 소득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 대부분의 어선은 10톤 미만이어서 어업의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1만 600M/T에 달했던 규석은 1993년에 1,057M/T로 감소했다가 1994년부터는 생산이 중단되었다. 고령토 생산도 계속 줄어 2003년에 3,132톤 생산되다가 2004년 중단되었다.
무안은 목포시와 인접하고 광주광역시에 이르는 도로의 교통이 발달해 주민의 상업활동도 이들 지역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업활동은 정기시장과 읍 · 면 소재지의 상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5일의 정기시장은 무안장이 4·9일, 일로장이 1·6일, 망운장이 1·6일, 청계장이 3·8일, 해제장이 5·10일에 개장된다. 이 중 특히 무안장은 일용품을, 해제장은 소 · 생선 · 곡물을, 일로장은 소를 많이 거래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교통은 군의 동부에 호남선 철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사창(社倉) · 몽탄(夢灘) · 명산(明山) · 일로(一老) · 임성(任城) 등의 5개 역이 있다. 도로는 목포∼광주를 연결하는 4차선 고속화도로가 군의 동북에서 서남으로 통과하는데, 그 중심에 무안읍이 있다. 1997년부터 건설 사업이 본격화되어 2007년 11월 개항한 무안국제공항은 세계를 향한 호남의 관문으로서 그 역할을 안고 있다.
무안 · 망운 · 해제반도 및 여러 섬들이 수려한 천혜의 해상경관을 이루고, 승달산 등 개발 가능한 잠재적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없다. 다만, 인근 목포시민과 군민은 봄철 벚꽃이 만발할 때면 삼향읍 유교리의 군산동, 여름철에는 톱머리해수욕장, 가을철 단풍 때는 승달산 등을 즐겨 찾는다. 또, 승달산 · 군산동을 지나 서해바다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무수한 작은 섬들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망운면 피서리에 있는 톱머리해수욕장은 길이가 2㎞이다. 지하수가 풍부하고 경사가 완만한데다 200년생 해송이 백사장에 줄지어 서 있으며, 수질이 깨끗한 편이다. 해수욕 · 찜질 등과 함께 썰물 때는 고동줍기 · 굴따기 등도 할 수 있고 낙지 · 도미 · 숭어 등을 값싸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는 야영장과 약간의 숙박시설 · 탈의실 · 샤워장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홀통유원지 겸 해수욕장은 현경면 소재지에서 해제면 쪽으로 15㎞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바다낚시 및 해수욕이 가능하다. 망운면 원송현 마을 나루터를 중심으로 1㎞쯤 모래가 깔려 있고 물이 맑아 해수욕장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나, 휴식공간 · 민박 · 숙박 등의 시설 확충이 요구되고 있다.
조금나루 유원지는 4㎞가 넘는 백사장에 송림까지 갖추어진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또,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는 조용하고 횟집이 많아 주말의 가족 휴식처로 적당하다. 이곳은 세발낙지와 오도리(새우)가 유명하며 분재영농조합이 있다는 것이 큰 특색이다. 청계면 도대리에는 골프장이 들어섰다. 그 밖에도 몽탄면의 항공우주관, 학전시장, 초의선사 탄생지, 도요지 등도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주요 사찰로는 승달산 중턱에 자리한 목우암(牧牛庵)이 있고 읍내에는 약사사(藥師寺)가 있다. 약사사에는 약사여래불상(藥師如來佛像)과 범종각(梵鐘閣)이 보존되어 있다. 해제면 산길리에 있는 원갑사(圓甲寺)는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영암의 도갑사(道甲寺)와 함께 남도의 삼갑사(三甲寺)로 불리는 전통사찰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팽나무 · 개서나무숲, 천연기념물인 가마리의 동백나무, 무안읍 용월리의 백로 · 왜가리 서식처 등이 있어서 영산강하구언과 해안일주도로가 포장되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35.67㎢, 인구 1만 117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무안군 외읍면(外邑面)으로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어 성내 · 성동 등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면성면(綿城面)으로 개칭되었다가 1957년에 무안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몽탄면 성암리를 편입했으며, 197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현경면 평룡리와 청계면 사마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읍의 동남부는 높이 200m 내외의 산지이며, 북서부에는 야산과 평야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양파 · 마늘 등이다. 특히, 양파의 특산지로 그 재배량이 연 2만 톤을 상회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원예농업으로 꽃과 고추를 생산한다.
고절리에는 돼지 · 비육우 · 한우를 기업적으로 사육하는 축산이 있고, 배합사료를 생산하는 사료공장이 있다. 또한, 성남리에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자기공장이 있다.
도로는 읍의 북동쪽에서 남서방향으로 광주∼목포를 잇는 도로가 나 있다. 따라서 무안군의 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유적은 교촌리의 무안향교 · 유산정, 고절리의 병산사 · 면루성, 성남리의 공수산성, 성동리의 정득수가옥, 매곡리의 박봉기가옥 · 영화정 · 죽헌정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성동리에 약사사석불 · 이인사지당간지주 · 대우사 석불 등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용월리의 백로 · 왜가리 서식지가 분포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2개 교, 대학교 2개 교가 있다.
성내(城內) · 성동(城東) · 용월(龍月) · 성남(城南) · 교촌(校村) · 고절(高節) · 매곡(玟谷) · 성암(星巖) · 평룡(平龍) · 신학(新鶴)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66.32㎢, 인구 7,19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월암리이다. 본래 무안군 지역으로 지장(支壯) · 서암(西岩) · 삼호(三湖) 등 3개 리를 병합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로면의 감돈 · 지장 등 2개 리가 편입되었고, 1916년 영암군에 속했던 양호도(羊湖島)를 복룡리에 편입시켰다. 1980년 일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동부와 남부는 영산강에 접하고, 서쪽 경계에는 남창천(南倉川)이 남류하면서 유역에 넓은 평야를 만들었다. 또 중부는 간척에 의해 넓은 경지가 조성되었고, 남부와 북부는 높이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감자 등이며, 이 밖에 무 · 배추 · 유채 등도 재배한다. 남서부의 영산강 연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일부 주민은 영산강하구언공사의 완공으로 생업을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향면을 사이에 두고 목포시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 문화적으로 목포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 있는 지역이다. 호남선 철도가 통과하고 목포∼무안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광암리 · 감돈리 일대에 고인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 교(분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월암(月巖) · 청호(淸湖) · 망월(望月) · 죽산(竹山) · 구정(九井) · 의산(義山) · 지장(支壯) · 감돈(甘豚) · 용산(龍山) · 산정(山亭) · 광암(光巖) · 상신기(上新基) · 복룡(伏龍)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9.11㎢, 인구 2,2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목동리이다. 본래 영광군에 속해 오다가 조선 인조 때 감목관(監牧官) 설치로 목장면(牧場面)이 되었다.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면서 망운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면서 현화면(玄化面)의 도천 · 대박산 · 학례 등 9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1년 운남출장소(雲南出場所)가 설치되었고 1983년 운남출장소가 운남면으로 승격되면서 분리 · 독립되었다.
무안반도에서 서남방향으로 돌출한 망운반도의 중앙부에 해당되며 동서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지세는 면 전체가 기복이 심하지 않은 낮은 구릉과 평지로 되어 있으며, 토양은 사질로 토심이 두껍고, 전 지역에 지하수가 흘러 곳곳에 관정이 뚫려 있다. 해안에는 넓은 갯벌이 있으며, 간척지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구마 · 양파 등이다. 특히, 이곳의 황토밭에서 산출되는 고구마는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그 맛이 밤과 같아서 ‘밤고구마’로 이름이 나 있다.
과수로는 포도 및 감이 있는데 피서리의 톱머리에서 나는 단감은 감미율이 높고 한 개의 무게가 300g 이상이 되어 이 지방 특산물로 손꼽힌다. 연안 해역에서는 굴 · 고막 등의 패류양식이 이루어지며, 맛이 좋은 세발낙지가 많이 잡힌다.
운남면 연리에서 현경면 외반리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다. 곰리 앞 모래밭에는 캐나다가 원산지라고 하는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피서리의 톱머리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목동(牧東) · 목서(牧西) · 피서(皮西) · 송현(松峴) · 탄도(炭島)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3.11㎢, 인구 3,5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천리이다. 본래 무안군 박곡면(朴谷面)이었는데,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로면의 신적 · 동막 · 영춘 등 8개 리와 일로면의 일부를 병합해 다시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32년에 석진면(石津面) 일부를 병합했으며, 1939년 몽탄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에는 성암리를 무안면에 편입시켰다.
면내에는 승달산 · 연징산(淵澄山, 300m) · 마협봉(馬俠峰, 285m) · 두대산(斗大山, 240m) · 건지봉(乾芝峰, 221m) 등이 있고, 대부분의 지역도 높이 200m 내외의 산지로 되어 있다. 평야는 면의 동계를 이루는 영산강의 서안과 남창천, 그리고 남천의 유역에 형성되어 있는데 수원은 양호하나 그 면적은 넓지 못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구마 · 양파 등이다. 영산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명산리 부근의 지역에서는 장어와 숭어 · 해파리가 많이 잡힌다. 특히, 장어는 그 맛이 좋아 이 고장의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주에 호남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그 공장의 폐수가 영산강을 오염시키면서부터 장어잡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급기야 영산강 하구언이 완공되면서 그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중간형태인 분청사기를 구었던 가마터가 있으며 몽탄기와가 유명했다. 현재도 전통기법의 분청사기와 옹기가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목포∼나주를 잇는 철도와 일로읍에서 무안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사천리와 대치리에 삼국시대의 도요지로 알려진 가마터가 있으며, 내리의 화산(花山)마을에서는 반달돌칼이 발견되었다.
이 밖에 달산리에 법천사의 목우암, 이산리에 식영정(息影亭), 사창리에 우산사, 대치리에 총지사지, 양장리에 파군교(破軍橋) 등이 있다. 이산리에는 나주임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사천(沙川) · 귀학(歸鶴) · 약곡(藥谷) · 몽강(夢江) · 봉명(鳳鳴) · 달산(達山) · 학산(鶴山) · 구산(九山) · 이산(梨山) · 내(內) · 대치(大峙) · 사창(社倉) · 다산(茶山) · 청룡(靑龍) · 양장(良將) · 명산(明山) · 당호(唐湖) · 봉산(鳳山) 등 18개 리가 있다.
군의 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44.53㎢, 인구 3만 68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임성리이다. 본래 나주군에 속한 지역으로 1895년 무안군에 편입되었고,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 소속이 되어 이로면 백학(白鶴) · 장재(壯在) 등과 일서면 대치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그 뒤 1962년에 이로면의 대양(大陽) · 석현(石峴) · 옥암(玉巖) 등을 병합했으며, 1973년에 석현리가 목포시로 편입되었다. 1988년에는 대양리와 옥암리가 목포시에 이속되었다.
지세는 국사봉 · 대봉산(大峯山, 240m) · 오룡산(五龍山, 226m) · 봉화산(烽火山, 205m) · 전봉산(傳峰山, 186m)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높이 100m내의 구릉지이다. 면의 동쪽에서 남창천이 남류하면서 하류에 넓은 평야를 형성하여, 농업의 적지를 이루고 있다.
종전에는 쌀 · 보리 · 양파 · 고구마 등이 주로 생산되었으나, 최근에는 마늘 · 시금치 · 고등원예 등의 경제성이 높은 작물의 재배지로 전환되었다. 축산업으로 양계가 활발하다.
연안해역에서는 김 · 굴 · 고막 등의 양식업이 성하고, 낙지가 많이 잡힌다. 도로는 광주∼무안을 잇는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지방도로가 동서로 나 있고, 임성리에는 철도역이 있어 교통은 대체로 편리하다. 특히 2008년 5월 광주∼무안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광주와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최근 전남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하여 서남해안권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왕산리에 봉수대, 유교리에 나상열가옥이 있다. 관광지로는 유교리의 군산동에 호수 등이 있는데, 봄철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더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임성(任城) · 남악(南岳) · 용포(龍浦) · 맥포(麥浦) · 유교(柳橋) · 왕산(旺山) · 지산(芝山)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단에 위치한 면. 면적 34.93㎢, 인구 3,35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리이다. 본래 무안군 망운면이었는데,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기면을 통합해 망운면으로 개칭하고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 망운면의 서남부지역이 독립하여 운남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3년에 운남면으로 되었다.
망운반도에 위치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수산증식의 적지이며, 면 전체가 고산심곡이 없는 평지로 되어 있어서 농업에도 알맞은 지역이다. 해안에는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간척지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고구마 · 마늘 · 유채 · 양파 등이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밤고구마로 유명하다. 해안에서는 김과 패류가 생산되며, 갯지렁이도 많이 잡힌다. 현재 간척지를 이용한 대규모 초지조성으로 2만 두 사육규모의 양돈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동암리에 사도세자제당, 연리에 충효단, 성내리에 조산사(祧山祠) 등이 있다. 옛 다경만호(多慶萬戶)가 주둔하던 다경진(多慶鎭)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성지(城址)만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연(蓮) · 내(奈) · 성내(城內) · 동암(東巖) · 하묘(荷苗)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50㎢, 인구 6,8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림리이다. 본래 무안군 지역으로 승달산 서쪽이 되므로 일서면이라 하였는데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서면과 이서면, 삼향면 대치동(大峙洞) 일부, 외읍면(外邑面) 대동(大洞) 일부를 병합해 청계면이라 칭하고 다시 무안군으로 편입시켰다. 1983년삼향면 지산리 일부를 편입하고, 사마리 일부를 무안읍에 편입시켰다.
면의 동부는 승달산을 비롯한 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서남부의 해안에는 넓은 갯벌이 전개된다. 매립간척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특히 복길 · 창포 간척지는 쌀 증산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감자 · 고구마 · 콩 · 유채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는 양파 · 마늘 · 잎담배 등을 재배한다. 특히, 마늘 · 양파의 특산지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목포와 인접한 도시근교 지역으로서 편리한 교통을 이용해 고등채소를 생산, 소득을 증대시키는 농가가 늘고 있다. 목포와 광주간을 잇는 고속화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백여 그루의 팽나무 · 개서나무 방풍림이 청천리에 있고, 사마리에는 동백나무 숲이 있다. 이 밖에 강정리에 봉수대지, 도림리에 선돌이 있으며, 사마리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액호를 써주었다고 전하는 화설당(花雪堂)이라는 정자가 액호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또, 청천리에 청천사(淸川祠) · 가마터 · 마곡사 · 태봉사(台峰祠)와 고인돌군 등이 있고, 태봉리에는 삼왕묘(三王廟)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대학 1개 교가 있다.
도림(道林) · 사마(司馬) · 서호(西湖) · 남안(南安) · 도대(道垈) · 태봉(台峰) · 복룡(伏龍) · 청수(淸水) · 송현(松峴) · 강정(江亭) · 구로(九老) · 상마(上馬) · 남성(南星) · 복길(卜吉) · 청계(淸溪) · 월선(月仙) · 청천(淸川) 등 17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4.43㎢, 인구 5,7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정리이다. 본래 무안군 지역으로 사면이 바다로 되어 있으므로 해제면이라 하였는데 1910년 지방관제 개편 때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하산면(珍下山面)의 일부를 병합해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신정리의 봉대산(烽臺山, 195m)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100m 내외의 산지와 구릉 및 저지로 되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안선의 길이가 75㎞에 달하며, 해안에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등이며, 특용작물로는 잎담배 · 참깨 · 양파 · 마늘 등이 생산된다. 해안에 접한 지역에서는 김 · 조개 · 낙지 · 숭어 등이 많이 나며, 수산물의 어획 및 채취로 인해 가계소득이 높은 편이다.
특히, 이 고장에서 잡히는 세발낙지는 그 맛이 좋아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북쪽에 있는 도리포(道里浦)는 숭어 · 돔 등의 어종이 풍부한 자연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무안읍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양월리에서 해제반도 중앙을 지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정리 옛 읍 입구 봉대산에 봉수대와 석성 흔적, 그리고 도굴된 것으로 보이는 옹관묘와 그 파편이 산재해 있으며, 송석리에는 선돌이 있다. 광산리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로 보이는 돌도끼가 발견되었다. 임수리에 임치진성, 광산리에 미륵당, 산길리에 원갑사가 있다.
이 밖에 덕산리에 분매사(盆梅祠), 대사리에 학산사(鶴山祠), 양매리에 모충사(慕忠祠) 등이 있다. 면의 서쪽 약 5㎞ 지점에는 100m의 성책과 5기의 전라우도수군첨절제사 공적비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은 옛날 함평현에 속하는 임치진(臨淄鎭)이다.
신라 때는 임해현(臨海縣), 고려 때는 임치현(臨淄縣)이라 하여 서남해지역의 해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봉대산에는 봉수대터와 반달형 석성 흔적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정(新井) · 덕산(德山) · 대사(大士) · 유월(柳月) · 용학(龍鶴) · 송석(松石) · 만풍(萬豐) · 양매(兩梅) · 학송(鶴松) · 양월(洋月) · 산길(山吉) · 임수(臨水) · 석룡(石龍) · 광산(廣山) · 창매(蒼梅) · 천장(泉壯) · 양간(兩干) 등 17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34㎢, 인구 5,2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외반리이다. 본래 무안군 다경면(多慶面)이었는데 1910년 지방관제 개편시에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화면(玄化面)의 평룡 · 양학 · 학동 · 모촌 등 19개 리와 망운면의 일부를 병합해 현화와 다경의 이름를 따서 현경면이라 하고 다시 무안군에 편입시켰다.
면 전체가 높이 50m 이하의 야산이나 평지로 되어 있어서 농업에 적합하다. 동서로 함평만과 서해에 접하고 있어 연안양식 어업의 적지를 이루고,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부속된 무인도로 죽도(竹島) · 대도(大島) · 소도(小島) · 어은도(漁隱島) · 은벌도(銀伐島) · 고도(孤島) · 주당도(籌堂島) 등이 있다.
쌀 · 보리 · 유채 · 고구마 · 양파 등을 주로 생산하며, 특히 고구마와 유채의 생산량이 많다. 양학리에서는 축산업으로 젖소와 돼지를 많이 사육한다.
수산업으로는 연안의 해역에서 굴 · 고막 · 바지락 · 김 등이 생산되며, 낙지가 많이 잡힌다. 특히, 굴과 낙지는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여 이 지방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지하자원으로 양질의 고령토가 채광된다.
외반리를 중심으로 운남면 연리와 해제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면의 서부를 지나고 있으며, 평산리에서 함평 · 무안 등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동부를 각각 통과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평산리에 평산사가 있으며, 가입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300년의 팽나무가 있다. 그 둘레가 4m, 높이가 20m나 되는 이 나무에서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외반(外盤) · 양학(養鶴) · 동산(東山) · 평산(平山) · 수양(垂楊) · 용정(龍井) · 오류(五柳) · 현화(玄化) · 해운(海運) · 송정(松亭) · 마산(馬山) · 가입(加入) 등 12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