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으로 재직했다. 관직생활 중 조선총독부 간행의 조선조사자료총서인 『산업조합 설립까지(産業組合設立まで)』(1932),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1941), 『조선농촌단체사(朝鮮農村團體史)』(1942) 등을 저술했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조선농회(朝鮮農會) 총무부장을 지냈으나, 1947년 개인 사업을 경영하며, 일제 식민사학에 대한 기성 사학계의 도전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의 차원에서 일제침략사 및 한국고대사 연구를 진행했다.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近世日本의 朝鮮侵奪史)』(1964), 『(군국일본)조선강점삼십육년사((軍國日本)朝鮮强占三十六年史)』(상 · 중 · 하, 1965~1967), 『단군조선사기연구(檀君朝鮮史記硏究)』(1968),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1969), 『일본상고사(日本上古史)』(1970), 『한국고대사(韓國古代史)』(상 · 하, 1971), 『백제사(百濟史)』(1976), 『가야사(加耶史)』(1978) 등 다수의 저작을 출판했다. 1976년 10월 8일 이유립(李裕岦) · 안호상(安浩相) · 유봉영(劉鳳榮) 등과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해 국사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