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었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중서시랑평장사·중서평장사와 더불어 평장사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중서문하성의 구성은 당제(唐制)에 따라 중서성과 문하성의 이원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평장사 역시 양성(兩省)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서문하성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장관으로 하는 단일 관부였으므로 평장사의 여러 관직은 병렬관계가 아닌 상하관계에 있었고, 그 가운데 문하평장사는 중서시랑평장사의 아래, 중서평장사의 위에 위치하였다.
또한, 항상 충원되는 것이 아니라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또는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라 하여 문하시랑평장사나 중서시랑평장사가 문하평장사와 중서평장사를 겸임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밖에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문하시랑평장사를 줄여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된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요구에 의하여 고려의 관제가 격하될 때 중서평장사와 함께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바뀌었으며, 1308년(충선왕 복위) 첨의시랑찬성사(僉議侍郎贊成事)와 아울러 중호(中護)로 개칭되었다가 곧 첨의찬성사로 환원되었다.
1356년(공민왕 5) 문종 관제가 복구되면서 문하평장사로 되었으며, 이 후 1360년 평장정사(平章政事)로, 1362년 다시 첨의찬성사로, 1369년 문하찬성사로 각각 변천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