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9년(예종 1) 관찰사 이계손(李繼孫)이 함흥향교(咸興鄕校) 내 장도회(長都會)를 설치하여 학전(學田)과 노비를 두고 선비를 양성하였다.
1563년(명종 18) 관찰사 유강(兪絳)이 향교로부터 원사를 분리하여 문회당(文會堂)을 설립하였으며, 이 때 영각(影閣)을 지어 공자(孔子)의 화상을 봉안하였다. 1575년(선조 8) 관찰사 이후백(李後白)이 서원으로 승격시키고 이듬해 ‘文會(문회)’라고 사액되었다.
1607년(선조 40)에는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이계손(李繼孫)을 모셨으며, 1628년(인조 6) 한준겸(韓浚謙), 1642년(인조 20) 유강·이후백, 1667년(현종 8) 문덕교(文德敎)○ 1702년(숙종 28) 이광화(李光夏), 1712년(숙종 38) 남구만(南九萬)을 추가배향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었다가 1621년(광해군 13) 관찰사 심돈(沈惇)이 중건하였고 1686년 유생들이 개축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장서각·광풍루(光風樓) 등이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