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16m, 너비 1.28m. 보루는 강화도 남서부의 해안을 감시하기 위하여 1679년(숙종 5)에 정비, 축조되었다.
예로부터 강화도는 우리나라 서해연안에서 예성강·임진강·한강 등의 물길을 따라 개성·한성 등 왕도를 비롯한 중부내륙지방으로 외적이 침투하거나 황해도 이북으로 북상하는 것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몽고족의 침입과 병자호란 당시는 왕실의 피난처가 되었기 때문에 최근세까지도 해안방비에 심혈을 기울여왔던 곳이다.
특히, 조선 숙종 때 강화도에 6진(鎭)·7보(堡)·9포대(砲臺)와 더불어 53개의 보루가 축조되었는데, 그 중 49개의 보루는 1679년 윤이제(尹以濟)가 강화유수로 재직할 당시 왕이 병조판서 김석주(金錫胄)를 파견하여 지형을 순찰하고 축조를 명한 것으로, 이 공사에는 함경도·황해도·강원도 등 3도의 승군(僧軍) 8,000명과 어영군(御營軍) 4,000명이 동원되었다.
미곶보도 바로 이 49보루 중의 하나로 현재 화도면에는 장곶(長串)·북일곶(北一串)·미곶 등의 보루가 3㎞ 가량의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동편에 자리잡은 미곶보는 미곶돈대(彌串墩臺)·미루지돈대(美樓只墩臺, 彌樓只墩臺)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보루는 40∼120㎝의 네모난 돌로 벽을 쌓았는데 지형을 따라 타원형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해안을 향하여 네 곳에 대포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또, 윗 부분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여장(女墻)을 두른 흔적이 보이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가운데로 난 출입구는 다른 보루와 달리 무지개문[虹霓門]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보루나 돈대는 모두 작은 성 모양으로 축조된 진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