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44∼48. 이름은 ‘해색주(解色朱)’인데 『삼국유사』에는 ‘해’를 성씨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3대 왕인 대무신왕이 죽자, 태자 해우(解優 : 뒤의 모본왕)가 어리므로 왕의 아우인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민중왕은 대무신왕의 아들이며 모본왕의 동생이라고 되어 있다. 5년 동안 재위하였는데 재위 4년 만인 47년 7월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하다가 한 석굴을 찾아내고 좌우의 신하에게 자신의 장지(葬地)로 삼아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해 10월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 大加)인 대승(戴升) 등 1만여가(家)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귀부(歸附)하였다. 48년에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그가 선정해놓았던 민중원의 석굴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