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지(柔之), 호는 나산경수(蘿山耕叟).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典書) 박침(朴沈)이며, 어머니는 밀산군(密山君) 박린(朴隣)의 딸이다.
1390년(공양왕 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에 보직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호조전서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408년(태종 8) 진위사(陳慰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세자에 대하여 보고를 잘 함으로써 황제의 환심을 사게 하고 돌아와 태종으로부터 미두(米豆)를 하사받고 이어 선공감역(繕工監役)이 되었다.
1412년 앞서 지인주사(知仁州事)로 있을 때의 부정사건으로 연루되어 태형(笞刑)을 받고 사임하였다. 수원부사로 재직 중이던 1417년 한양으로 올라가는 과천현감(果川縣監) 윤돈(尹惇)의 전별연(餞別宴)에서 금천현감(衿川縣監) 김문(金汶)이 과음하여 죽은 일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뒤에 다시 등용되어 세종 때 안변도호부사(安邊都護府使)를 지냈다. 1424년(세종 6) 딸이 세종의 후궁인 귀인박씨(貴人朴氏)가 됨으로써 찬성(贊成)에 추증되었다. 문장이 전아(典雅)하여 이름이 높았다.
저술로는『배불론(俳佛論)』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