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 출신.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관내 동화시장(桐花市場)에서 군중 수백 명을 모아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일본헌병의 추격을 받아 동지 안성섭(安成燮)·이길선(李吉善)·정봉수(丁奉洙) 등 5명과 같이 피신하여 전라북도 일원을 내왕하면서 부일(附日)하는 무리에게 경고문을 발송하였다.
1920년 11월 19일 전주 다가산(多佳山)에 거점을 두고 군자금을 모금하여 남원·운봉 지구에서 4차에 걸쳐 200여 원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었다.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