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영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전라북도 장수군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8년(고종 35)
사망 연도
1967년
출생지
전라북도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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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전라북도 장수군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북도 남원 출신.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관내 동화시장(桐花市場)에서 군중 수백 명을 모아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일본헌병의 추격을 받아 동지 안성섭(安成燮)·이길선(李吉善)·정봉수(丁奉洙) 등 5명과 같이 피신하여 전라북도 일원을 내왕하면서 부일(附日)하는 무리에게 경고문을 발송하였다.

1920년 11월 19일  전주 다가산(多佳山)에 거점을 두고 군자금을 모금하여  남원·운봉 지구에서 4차에 걸쳐 200여 원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었다.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한민족광복투쟁사연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8)
『독립운동사』 3·7·9·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1982)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대구복심법원판결문(大邱覆審法院判決文)」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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