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 (재)

박달재
박달재
자연지리
지명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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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명칭 유래

이 일대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박달재에 관련하여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옛날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다.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박달은 고갯마루 방향을 바라보니 꿈에 그리던 금봉이가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박달은 고개 쪽으로 달려가 금봉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하였다. 박달은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이를 끌어안았으나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천길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박달은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는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한다.

1948년에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울고넘는 박달재(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가 발표되어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제천시 국도변의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개설

박달재의 높이 504m로, 차령산맥의 지맥인 구학산(九鶴山, 971m)과 시랑산(侍郎山, 691m)의 안부(鞍部)에 해당한다. 박달재를 박달산 · 박달령 · 박달현(朴達峴) · 박달치(朴達峙)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천등산 박달재로 알려져 있다.

자연환경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천등산(天登山, 807m)은 박달재와는 원서천(院西川)을 사이에 두고 있다.

박달재 기슭에는 60∼80년생 소나무 수림, 높고 낮은 봉우리와 경원사의 기암괴석, 산정상의 옹달샘 등의 좋은 자연여건을 바탕으로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개장된 박달재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의 구역면적은 170ha이고, 일일 최대수용인원은 1,000명, 일일 최적수용인원은 700명이며, 숙박시설로 통나무집 17동, 황토방 8동, 단체숙소 1동과, 야영장 2개소(10,000㎡), 주차시설(6,300㎡ ·200대), 기타 운동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어, 도시민들에게 자연휴식공간으로서 많은 사랑받고 있다. 2009년 1월 1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는 박달재자연휴양림 휴식년제 기간이다.

형성 및 변천

박달재에는 제천에서 서울로 가는 관행길이 나 있으며, 1217년(고종 4) 7월김취려(金就礪)가 거란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한다.

박달재는 38번국도가 제천시와 충주시를 연결하고 있으며, 1970년 도로확장 및 포장이 이루어졌다. 제천에서 충주를 잇는 박달재는, 터널로 인해 박달재 도로의 이용가치를 상실하였으나, 박달재 옛길이라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유지 · 관리하고 있다.

현황

박달재 주위에는 한벽루(寒碧樓) · 덕주사마애불상(德周寺磨崖佛像)이 있고, 그밖에 도지정문화유산인 금남루(錦南樓) · 팔영루(八詠樓) · 자양영당(紫陽影堂) · 청풍향교(淸風鄕校) 등이 있고, 명승으로 의림지(義林池)가 있다.

참고문헌

『충북관광』(충청북도, 1998)
『전설속의 관광지』(한국관광공사, 1997)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박달재휴양림(http://www.cbhuyang.go.kr/bakdaljae/)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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