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식(申圭植)이 독립운동 방략의 하나인 준비론(準備論)의 입장에서, 장차 독립운동을 담당할 청년들을 중국 및 구미 각급학교에 유학시키기로 하고 유학예비교육을 위하여 프랑스 조계 안에 설립하였다.
강사는 박은식(朴殷植)·신채호(申采浩)·홍명희(洪命熹)·문일평(文一平)·조소앙(趙素昻) 등과 혁명의 선구자 농죽(農竹), 그리고 미국 화교인 모대위(毛大衛) 등이었으며, 교과목은 영어·중국어·지리·역사·수학 등이었다. 3기에 걸쳐 100여명의 한국 청년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을 중국의 각 대학과 구미 각국에 유학할 수 있도록 알선하여주었다.
이 중에는 뒷날 신규식의 사위가 된 독립운동가 민필호(閔弼鎬)도 포함되어 있었다. 뒤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실무를 담당할 세력을 배출하였고, 독립운동의 중추적 구실을 할 인재를 양성하였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에 있어 높이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