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득순 ()

회화
인물
해방 이후 「부인상」 · 「나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이칭
이칭
소성(素城), 소리(素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0년 9월 26일
사망 연도
1990년 9월 6일
본관
영해(寧海)
출생지
함경남도 문천
정의
해방 이후 「부인상」 · 「나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영해(寧海). 호는 소성(素城) · 소리(素里). 함경남도 문천 출신.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하다가 1934년 일본 도쿄[東京]의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8년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에 머무르다가 다음 해 서울로 가서 당시 주1 도시계획과에 근무하며 그림을 담당하였다. 그러면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소녀상 주제의 작품들이 입선을 거듭하였다. 1942년의 「소녀 좌상」은 특선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객관적 사실주의 역량이 발휘된 것이다.

그밖에 1940년에 조직된 다이헤이요미술학교 동문 단체인 PAS동인전 참가와 1943년 선전 특선작가 신작전 초대 출품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각광을 받았다. 광복 후 1947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때에는 서양화부 추천 작가로 참가하였다.

이후 초대 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며 두드러진 사실적 묘사력과 서정적 표현 수법의 여인상과 초상화, 자연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꽃과 과일을 소재로 삼은 정물화도 즐기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작품 활동을 보여 주었다. 6·25 중에는 국방부 육군 종군화가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전쟁 관련 스케치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955∼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8년 목우회(木友會) 창립 회원, 1974년 한국신미술회 창립 회원 및 회장, 1961∼1965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 1966년 상명여자사범대학 교수, 1972∼1976년 영남대학교 교수 및 예술학부장, 1978∼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 부문, 1986년 함경남도 문화상, 1989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문화대상, 1998년 제3회 카톨릭미술특별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박득순화집』(동아일보사, 1990)
국립현대미술관(www.moca.go.kr)
주석
주1

일제 강점기에, 서울 지역에 둔 행정 구역. 총독부령(總督府令)에 의하여 1910년 10월 1일 자로 이전의 한성부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