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계립(季立), 호는 금호(錦湖)·습재(習齋).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박사섭(朴師燮)이다. 오희상(吳熙常)의 문인이다.
181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816년 의릉참봉(義陵參奉)에 제수되고 능침(陵寢)을 잘 수호(修護)한 공로를 인정받아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로 승진하였으며, 뒤이어 감찰(監察)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워 겨우 『소학(小學)』과 『사기(史記)』를 배울 때 벌써 선현의 가훈(嘉訓)을 써서 벽 위에 붙여놓고 항상 보고 익혔다.
고향은 학식이 부족하여 배울 곳이 없으므로 남으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송환기(宋煥基)의 문하에 들어갔고, 다시 한성에 올라와 박윤원(朴胤源)에게 글을 배웠다.
또한, 이봉수(李鳳秀)를 비롯하여 홍직필(洪直弼) 등과도 깊이 사귀어 학문을 서로 강마하였다. 박명벽의 학풍을 앙모하여 사방에서 문하생들이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