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중앙 최고의 국립대학인 국자감에 여러 박사를 두어 자제들에게 유학과 전문에 관한 기술학을 교육하였다.
즉, 국자감의 국자학(國子學)에는 국자박사, 대학에는 대학박사, 사문학(四門學)에는 사문박사를 두어 유학을 교육하였고, 율학(律學)에는 율학박사, 서학(書學)에는 서학박사, 산학(算學)에는 산학박사를 두어 각각 전문에 관한 기술학을 교육하였다.
고려 후기에 국자감이 성균관으로 고쳐지고 새로 명경학(明經學)이 설치되자 명경박사를 두어 유교경전에 관한 교육을 맡게 하는 한편, 국자박사를 성균박사로 고치고 대학박사와 사문박사를 순유박사(諄諭博士) 또는 진덕박사(進德博士)로 이름을 고쳤다.
이 밖에 사천대(司天臺 : 뒤의 書雲觀)에는 복박사(卜博士), 태의감(太醫監 : 뒤의 典醫寺)에는 의학박사와 주금박사(呪噤博士)를 두어 각각 전문에 관한 기술학을 교육하였다. 그리고 태상시(太常寺)에는 태상박사를 두었는데, 이 태상박사는 교육보다도 의례에 관한 찬술과 시호의 제정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