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함(仲涵), 호는 창암(蒼巖). 박세헌(朴世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태창(朴泰昌)이고, 아버지는 박필기(朴弼琦)이며, 어머니는 이홍조(李弘肇)의 딸이다.
1755년(영조 31) 내시교관(內侍敎官)으로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760년 지평에 오르고 이듬해 승정원승지가 되었다. 그 이듬해 옥당(玉堂)에 들어갔고 1763년 부수찬·교리·수찬 등을 역임하고 1764년 다시 지평이 되었다.
결성(結城)의 안핵어사(按覈御使)가 되어 홍양해(洪量海)의 산송사건(山訟事件)을 해결하여 이름을 떨쳤다.
1766년 대사간이 되었고, 1775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일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지 못하고 무사안일에 흐른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어 대사간이 되었다.
정치적 수단도 뛰어나서 내외의 요직을 두루 지냈고, 외교적인 수완도 뛰어났다. 1772년 동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그림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