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중수(仲綏), 호는 낙옹(樂翁). 아버지는 형조좌랑 박민수(朴敏樹)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참봉 박경신(朴景信)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닦아 1549년(명종 4) 무과에 급제, 우후(虞候)·첨사(僉使) 등이 되었다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572년(선조 5) 대정현감이 되고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4년간 임지에 있으면서 기강을 바로 세우고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며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군민들이 선정비를 세워 그 덕을 칭송하였다.
만년에는 낙옹정(樂翁亭)을 지어 위기학(爲己學: 자기를 닦는 학문)에 힘쓰면서 후진을 가르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몸이 늙어 출전하지 못함을 비관하여 굶주리다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