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승진(勝進), 호는 우석(愚石). 서울 출신. 1923년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동경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중퇴하였다. 1925년 토월회(土月會) 간부로 연극계에 투신한 뒤, 1927년 극단 산유화회(山有花會)를 조직하여 홍노작(洪露雀)의 <향토심 鄕土心>을 연출하였다.
1928년 극단 화조회(火鳥會)를 조직하였고, 1929년개벽사(開闢社)에 근무하면서 토월회의 <아리랑고개>를 연출하였다.
1930년 단막희곡인 <절도병환자>를 시작으로 하여 희극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특히 동양극장의 연출가 겸 전속작가로 활약할 때가 전성기였다.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지냈고, 한때 연극계를 떠나 중국을 방랑하기도 하였다.
8·15광복과 함께 연극계에 다시 투신하여, 1948년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서 김영수(金永壽) 작 <혈맥 血脈>을 연출하여 연출상을 받았다. 그 뒤 국립극단 단장(1959)으로 활약하면서 연출에 전념하였다. 한국무대예술원 부원장(1950)을 비롯, 예술원 회원(1960)·한국연극협회 이사장(1962) 등을 역임하였다.
예술원상(1962)·문예상(1963)·5월문예상(1966)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연출작품은 <향토심>(1927)·<아리랑고개>(1929)·<춘향전>(1935)·<꽃피는 나무>(1943)·<혈맥>(1948) 등이 있고, 주요 희곡작품으로는 <공작선생>(1951)·<끝없는 사랑>(1951)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자전적인 저술인 ≪세세년년 歲歲年年≫이 있다. 희극을 주로 썼고 역사극 연출에 능하였으며, 순수연극보다는 대중연극에 가까운 연극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