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崇禎野老). 박형(朴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박승임(朴承任)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박녹(朴漉)이다. 정구(鄭逑)·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중후한 성품을 지녀 노성인(老成人)의 기품을 지녔으며,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강화도로 몽진하자 의금부도사로 왕을 호종하였다. 소를 올려 화의를 배척하며 자강(自强)을 도모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또 소를 올려 시정(時政)과 서북관방의 허술함을 논하고 선정양병(選丁養兵: 성인남자들을 선발하여 병사를 기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어, 통곡하며 되돌아와 두문불출하고 소나무·전나무·매화·대나무·연·국화를 심고 애완하며 여생을 마쳤는데, 육우(六友)라는 호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