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둘레 약 8.7㎞. 보리참성(菩提塹城) 또는 밀떡성이라고도 한다. 고려태조의 아버지인 왕륭(王隆)이 사찬(沙粲)의 벼슬에 있으면서 이 성을 쌓고, 아들인 왕건을 성주로 앉혔다.
그 뒤 신라가 망하자 918년 새왕조를 세운 고려는 수도를 이 발어참성에 정하였다. 이때부터 이 발어참성을 중심으로 개성이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뒤 1029년(현종 20)에 나성(羅城)을 쌓은 때로부터 1392년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이 발어참성이 외성 안의 궁성을 보위하는 황성(皇城)의 구실을 하였다.
성벽은 북벽과 서벽, 그리고 동벽의 일부는 돌로 쌓았고, 그 나머지는 흙으로 쌓았다. 성벽은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면을 맞추어 바깥 면만 쌓은 단축성벽이 기본이다.
성벽 위에는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를 둘렀다. 1018년(현종 9) 거란군을 물리치는 전투와 1359년(공민왕 8)과 1361년의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을 물리친 전투에서 이 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