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1.4m, 입지름 4.9㎝, 밑지름 7.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입 가장자리가 밖으로 굽어져 있고 목이 비교적 길며 몸체가 풍만하다. 목·어깨·몸체에 두줄의 띠선을 긋고 목과 어깨 사이에는 파초 이파리를 그렸으며, 어깨와 몸체에 걸쳐 앞뒤로 매국문(梅菊文)을 옆으로 길게 그렸는데, 파초문은 양식화되었으나 매국문은 사실적이다.
태토(胎土)는 정선되었고 유약(釉藥)은 빙렬(氷裂)이 없는 투명한 청백자유(靑白磁釉)로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다. 굽 안바닥은 유약을 칠하지 않았으며 굽다리는 높고 두껍다. 고운 모래받침을 받쳐 구워냈으며 입 부분의 일부는 수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2세기 후반에 진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도자기에 붉은색을 냈다는 사실만이 전하고 있을 뿐이며 후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비하여 중국은 원나라 때부터 백자에 진사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는 다양하고 다채롭게 사용되었다.
1976년에서 1984년에 걸쳐 발견·조사된 신안(新安) 해저유물 청백자 가운데에는 유약의 색, 태토, 기형, 문양배치, 번조방법(燔造方法) 등이 비슷한 병이 10여 점 이상 들어 있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청백자에 진사로 그림이 그려진 중국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