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5.8㎝, 입지름 15.7㎝, 밑지름 15.7㎝.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입 부분은 내경(內傾)되어 세워지고 몸체는 어깨 부분에서부터 팽배해졌다가 서서히 좁아지는 S자 곡선을 이루며 아랫부분에서 다시 벌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는 항아리이다. 유색(釉色)은 회백색을 띠고 있으며 빙렬(氷裂)이 없고 광택이 은은하다.
구연부(口緣部)와 어깨 부분에는 당초문대(唐草文帶)와 연판문대(蓮瓣文帶)가 장식되었으며, 밑부분에는 이중의 삼각선문대(三角線文帶)를 짙은 철화안료로 나타냈다. 또 몸체의 전면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모습의 용을 표현하였는데, 용의 부릅뜬 눈과 입, 뿔과 수염, 갈기와 몸체의 비늘 같은 표현이 휘날리는 구름과 함께 약동하듯이 묘사되었다.
그리고 철화안료의 발색(發色)은 붉은 철정색(鐵呈色)이 짙어 백색 바탕과의 색 대비가 강렬하다. 굽은 안바닥을 오목하게 파내었으며 굽다리에는 가는 모래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고, 노출된 태토(胎土)는 회황색을 띠고 있다.
이러한 회백색의 유(釉)와 특정한 형태, 철화안료로 묘사한 문양 등은 경기도 광주 일대의 17세기 요지인 상림리, 선동리, 정지리 등의 가마터의 백자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이 항아리도 이곳 관요(官窯)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러한 기형은 1489년(성종 20)에 만들어진 백자 청화홍치2년명(靑畵弘治二年銘) 송죽문(松竹文) 항아리(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에서 비롯되고, 1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는 백자 청화송죽인물문(靑畵松竹人物文) 항아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로 이어져 17세기 전반경의 변화된 모습이 이 항아리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항아리 표면에 장식된 운룡문으로 보아 이 항아리는 당시 궁중에서 사용하던 용준항(龍罇缸 : 용을 그린 항아리)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S자 곡선을 이루는 장신(長身)의 몸체에 짙은 철사로 박진감 있게 표현된 운룡문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서, 17세기 전반경의 대표적인 백자 철화 항아리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