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되기 이전에 주로 손으로 베는 것을 뜻한다. 손으로 베는 방법에는 엎쥐고 베기와 잦쥐고 베기의 두 가지가 있었다. 잦쥐고 베기는 엄지손가락이 하늘을 향하도록 치켜 세워 벼포기를 쥐고 베는 방법으로, 벼 이삭이 다 익어 꼬부라진 뒤에 벨 때 이렇게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벼뿐만 아니라 보리도 엎쥐고 벤다. 엎쥐고 베면 베기도 쉽거니와 널어 말리기에도 편리하다. 경상북도 영덕에서는 동서남북의 방향순으로 벼를 베었으나 현재는 바람에 쓰러진 부분을 먼저 벤다.
낫은 벼 이삭이 수그러진 반대쪽에 대어야 베기 쉽다. 한 사람이 다섯 줄을 맡아 베는데 경기도 김포에서는 위 아래 두 줄을 한데 잡아 벤 것을 1석이라 하며 다섯줄 네 포기를 벤 전부(20포기)를 한 단이라고 이른다. 그러나 충청남도 예산에서는 세 주먹만큼의 포기를 한 뭇이라 하고 스무 뭇을 한 가리라고 한다.
벼는 하루 한 사람이 200평쯤 베며 농가에서는 대체로 이를 품앗이로 한다. 그러나 놉을 사는 경우, 충청남도 예산에서는 하루에 쌀 두 되 반(1950년대)을 내었다.
3∼4일 동안 벤 벼는 논에 그대로 깔아둔 채 말렸다가 짚으로 묶어 세워 1주일 내지 열흘쯤 둔다. 무논에서는 논두렁에 걸쳐 놓거나 일단 묶어서 산이나 밭으로 옮겨놓고 말린다.
벼를 개상에 태질쳐 털었던 예전에는 단을 네 주먹만큼씩 묶었으나 탈곡기를 쓰는 요즈음에는 두 주먹씩 묶는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이와 같은 볏단 15∼20단을 한 터머지라 하며,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털어서 쌀 한 되 가량쯤 되는 벼를 한 다발이라 하고 스무다발을 한 광이라고 부른다.
볏단을 세워 말릴 때에는 스무 뭇을 단위로 하여 논바닥에 동서로 20여 일간 둔다. 이렇게 해야 아침의 동풍과 저녁의 서풍을 받아 잘 마른다.
그러나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볏단을 한 줄로 나란히 세우며(이를 장광이라 함) 한 광마다 벼 한움큼씩 거꾸로 세워서 표시한다.
충청남도 예산에서는 볏단을 가위다리 모양으로 엇걸어서 길게 이어 세우는데 이를 ‘가리친다’고 하며 20여일 동안 두번쯤 뒤집어 세운다. 곳에 따라서는 도난방지를 위하여 솔가지나 풀을 꽂아두며 모래나 흙 또는 왕겨를 뿌려놓기도 한다.
마른 볏단은 지게나 발채 또는 달구지로 운반한다. 한 지게에는 30∼40뭇을 실으며 소 길마를 이용하는 발채로는 120∼130뭇을 나를 수 있다. 옮겨온 볏단은 서로 엇걸어 묶어서(이를 장구단이라고 한다) 쌓아 두었다가 마당질을 한다.
벼 농사가 많은 집에서는 한꺼번에 털기 어려우므로 마당 한 귀퉁이에 볏단을 둥글게 쌓아두며(이때에는 이삭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한다) 위에는 짚으로 짠 주저리를 덮어 두는데 이를 볏가리라고 한다. 예전에는 곳에 따라 주저리 복판에 노적기(露積旗)를 따로 세우고 이를 한식 무렵까지 그대로 두었다.
호남지방의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같은 곳에서는 한가위 무렵에 날을 따로 받아 조상에 바칠 벼를 미리 베는데 이를 ‘올기심리’라고 한다. 만약 벼가 다 여물지 않았을 때에는 이를 그대로 베어 솥에 삶았다가 말려서 밥을 짓는다.
제상 밑에는 역시 햇짚을 깔며 의례를 마친 뒤 잘 묶어서 시렁 위에 얹어두었다가 삼신께 제사 지낼 때 다시 쓴다. 또 곳에 따라서는 처음 벤 벼포기 두세 개만을 윗목 벽에 가로 묶어 두었다가 이듬해 새 것으로 바꾸고 묵은 것은 불 사른다.
이와 같은 올기심리는 벼의 첫 수확을 조상에게 바치는 행사인 점에서 가을의 모든 수확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시월고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영남지방의 풋바심도 이와 비슷한 풍속으로 추석 전에 논 중에서 누렇게 잘 익은 부분을 지게로 한 짐 정도 먼저 베어, 밥을 짓고 조상님께 올린다.
제상의 밥은 솥의 남은 밥과 섞어 참석자들이 나누어 먹는데 이것은 조상의 축복을 고루 받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추수한 쌀을 내다 팔기에 앞서, 새로 찧은 쌀 가마 위에 떡 시루를 올려놓고 조상께 바치는 제례를 지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