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8년(명종 8)에 술승(術僧) 치순(致純)이 “국가의 환난이 경인년(庚寅年 : 무신정변이 일어난 해)으로부터 계묘년(癸卯年 : 金甫當의 亂이 일어난 해)을 지난 후에야 조금 가라앉을 것이니, 문·무관의 녹미(祿米)에서 약간씩 거두어 재제(齋祭)의 비용에 충당하여 기원하면 재난이 그치게 되리라.” 하는 말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그 뒤 금산왕자(金山王子) 등에 의한 거란병의 침입이 있자 1217년(고종 4)에 재건되어 고려 말까지 존재하였다. 고려 말에도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에서 치제(致祭)하는 신사(神祠), 즉 별기은지처(別祈恩之處)만 하여도 10여개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고려시대에 무격신앙(巫覡信仰)이 성행하였다는 한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