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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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제주 별방진 전경
제주 별방진 전경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조선전기 왜구방비를 위해 축조한 진(鎭). 방호소(防護所).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별방진(別防鎭)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지정기관
제주특별자치도
종목
제주특별자치도 시도기념물(1974년 04월 03일 지정)
소재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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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조선전기 왜구방비를 위해 축조한 진(鎭). 방호소(防護所).
내용

1974년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10년(중종 5) 제주목사(濟州牧使) 장림(張琳)이 김녕(金寧) 읍에 있던 방호소(防護所)를 이곳으로 옮겨 다시 축성(築城)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도(牛島) 부근에 빈번히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성의 규모는 둘레 2,390척(약 72㎞), 높이 7척(약 2.1m)이었으며, 1848년(헌종 14) 목사 장인식(張寅植)이 중수하였다.

동·서·남 세 곳에 문을 두었고 문 위에는 초루가 있었다. 성의 형태는 동서의 길이가 긴 타원형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였다. 성안에는 진사(鎭舍)·객사(客舍)·군기고(軍器庫)·별창(別倉)·대변청(大變廳) 등의 시설물이 있었으며, 병력으로 책임자인 조방장(助防將) 1인을 비롯하여 치총(雉摠)·성정군(城丁軍)·방군(防軍)·방포수(防砲手)·궁인(弓人)·시인(矢人)·봉군(烽軍)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1907년 군기고 혁파 이후 점차 성이 파괴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하도리 포구 공사로 북쪽 성렬이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현재 동·서·남쪽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탐라지(耽羅志)』(이원진, 1653)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이형상, 1703)
『제주의 방어유적』(제주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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