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미인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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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작품
조선 숙종 때 김춘택(金春澤)이 지은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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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숙종 때 김춘택(金春澤)이 지은 가사.
내용

조선 숙종 때 김춘택(金春澤)이 지은 가사. 지은 시기는 작자의 문집인 ≪북헌집 北軒集≫ 권4 논시문(論詩文)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내가 제주에 와 우리말로 <별사미인곡>을 지으니, 이는 정철(鄭澈)의 양미인곡(兩美人曲)에 추화(追和)한 것이다…….”라는 논시문의 기술에 의해 작자가 제주도에 유배된 1706년(숙종 32) 4월에서 1710년 6월 사이에 <별사미인곡>을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작품은 4음보 1행으로 계산하여 모두 79행이며, 율조는 3·4조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사의 분량은 양미인곡을 모방하여 창작하였으나 구성은 <속미인곡>과 같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

가사의 서두는 가사 중의 갑녀(甲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이보소 저 각시님 설운말ᄉᆞᆷ 그만ᄒᆞ오.”라고 시작하여 마치 앞에 어떤 하소연을 들은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속미인곡>을 연상하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대하여 가사 가운데 을녀(乙女)라 할 수 있는 여인이 자기의 소회를 풀기 시작한다. 곧, 그는 자기가 광한전 백옥경에서 임을 뫼시다가 아양을 부려 그것이 재앙이 되어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런 재주도 없어 임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모르니 그것이 더욱 큰 죄라 하며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도 모르니 다른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고 하여 스스로의 허물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또 임을 위하여 산호(珊瑚) 재기와 백옥함에 임의 옷을 간수하고 있지만 임에게 가져다 줄 사람이 없으며 혹시 가져간다 하여도 임이 보시기나 할 것인가라고 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생에서 임을 가까이 못하는 안타까움은 차라리 후생에서 구름이 되어 임에게 덮이고 싶다고 하였다. 그것을 임이 싫다고 하면 다시 바람이 되어 여름날 임을 부쳐주고 싶다고도 하고, 그것도 싫으면 명월(明月) 혹은 명산대천·노목·지초·오현금·말·새·짐승 등이 되어서라도 임에게 가까이 있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대하여 갑녀는 을녀가 이렇게 된 것은 팔자며 천명이니 구름이나 바람이 되면 무엇하겠느냐며 차라리 술이나 잔 가득 부어 마시고 한시름 잊으라고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대화체 구성이라는 점에서 <속미인곡>에 가까우나 내용에 있어서는 <사미인곡>의 영향도 보인다. 군주에 대한 원망은 거의 보이지 아니하고 간절한 충성을 읊었다는 점에서 연군가사의 면모가 두드러지며, 유배가사로서도 가사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이 가사를 지어놓고, 정철의 가사에 비하여 그 말은 더욱 아름답고 그 곡조는 더욱 처량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구성은 능란하다 하여도 양미인곡에 비하여 정제되지 못한 점이 있다. 국문학사상 미인곡계 가사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사로서 의의를 지니며, 당쟁으로 얼룩진 조선조 역사의 반영으로서도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별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에 대하여」(이병기, 『국어국문학』 15, 1956)
「미인가사고」(정익섭, 『호남문화연구』 1·2호, 1963. 12.·1964. 9.)
「속사미인곡의 연구」(서원섭, 『어문론총』 3, 경북대학교, 1966)
「사미인곡계가사의 비교연구」(서원섭, 『경북대학교논문집』 11,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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