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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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서예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원진국사 승형의 탑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보경사 (중산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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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원진국사 승형의 탑비.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183㎝, 너비 104㎝, 두께 17㎝. 비는 이수가 없는 형식으로 비신 상단 양 끝을 귀접이 한 규수형(圭首形)이다. 귀부의 머리는 용머리와 한 형태이고, 6각형의 귀갑(龜甲) 안에는 ‘王(왕)’자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비신 상단에는 해서(楷書)로 된 제액(題額)이 있고, 비신 둘레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당초문과 비신 상단의 귀접이는 고려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형식의 하나이다.

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김효인은 충렬왕 때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아버지로 글씨에 뛰어났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歐陽詢體)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렸다.

참고문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한국금석문대계』3(조동원, 원광대학교출판국, 1983)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 國書刊行會, 1974)
『朝鮮金石總覽』上(京城 : 朝鮮總督府, 1919)
집필자
김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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