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183㎝, 너비 104㎝, 두께 17㎝. 비는 이수가 없는 형식으로 비신 상단 양 끝을 귀접이 한 규수형(圭首形)이다. 귀부의 머리는 용머리와 한 형태이고, 6각형의 귀갑(龜甲) 안에는 ‘王(왕)’자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비신 상단에는 해서(楷書)로 된 제액(題額)이 있고, 비신 둘레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당초문과 비신 상단의 귀접이는 고려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형식의 하나이다.
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김효인은 충렬왕 때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아버지로 글씨에 뛰어났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歐陽詢體)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