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년(헌강왕 12) 봄북진(北鎭)의 보고에 의하면, 적국인(狄國人 : 여진인)이 진(鎭)에 들어와서 나뭇가지에 판목(版木)을 걸어 놓고 돌아갔다. 판목에는 “보로국과 흑수국인(黑水國人)이 신라국과 화통하려 한다.”고 씌어 있었다.
보로국은 이 시기로부터 멀지않은 때에 우리 역사에 편입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그 위치는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부근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는 보룡(寶龍)이라 하였으며, 조선 전기에는 봉룡(奉龍)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