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서쪽은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 남쪽은 옥천군, 북쪽은 청주시와 괴산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1′∼127°54′, 북위 36°22′∼36°36′에 위치한다. 면적은 584.25㎢이고, 인구는 3만 429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47개 행정리(174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이평리에 있다.
지층은 하부로부터 시대 미상의 하부 변성암층과 옥천층군을 이루는 변성퇴적암류, 고생대 초기의 해성퇴적암층과 이를 관입한 쥐라기의 화강암류 및 시대 미상의 맥암류로 분류되고 이를 부정합으로 덮는 충적층이 현 하천의 연변을 따라 발달되어 있다.
동쪽에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속리산(俗離山)의 천황봉(天皇峰, 1,057m) · 비로봉(毘盧峰, 1,020m) · 관음봉(觀音峰, 986m) 등의 험준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 서쪽에 노령산맥이 가로막으면서 차츰 얕아져 구병산(九屛山, 877m) · 국사봉(國師峰, 552m) · 시루봉(505m) 등이 솟아 서부 저지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는 음성의 부용산(芙蓉山, 644m)에서 차령산맥과 분기하여 500∼600m의 고도를 갖는 구릉성 산지들이 남북 방향으로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중앙부에는 동쪽에 학림산(鶴林山, 400m) · 수철령(水鐵嶺, 536m) · 구룡치(九龍峙, 506m) · 새목이재(589m) 등 소백산맥의 험준한 영봉이 연이어 솟아 있고 서쪽에 노령산맥이 가로막아 보은분지를 이루고 있다.
삼승면 금적산(金積山, 652m)의 남동사면 · 동사면 · 동북사면에는 고도 200m 정도의 경사변환점 아래에 산록면이 발달하고 있다. 경계선보다 높은 곳에는 동파작용에 의한 단애사면이 발달하였고, 솔리플럭션(solifluction) 작용에 의하여 경계선 아래의 산록면에는 단애물질이 운반되어 퇴적되어 있다. 산록면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은 기반암 · 기반풍화암, 하단은 측방침식에 의한 개석곡인 동시에 퇴적곡, 말단은 보청천(報靑川)의 범람원이 되고 있다.
속리산은 동류하는 낙동강, 남류하는 금강, 북류하는 남한강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금강수계의 보청천은 내북면 하궁리에서 발원하여 서북류하다가 동류하여 보은읍을 관통하면서 군내 최대 곡창지역인 고승들을 형성하고 남류하여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금강에 흘러들고 있다.
보청천의 주요 지류로는 삼가천(三街川)과 항건천(恒乾川)이 있다. 삼가천의 지류로는 적암천(赤巖川) · 한중천(閑中川) · 종곡천(種谷川) · 오덕천(五德川)이 있고, 항건천의 지류로는 불로천(佛老川) · 거현천(巨峴川) 등이 있어 여름철 집중호우 때는 홍수의 피해가 크다.
연평균 기온은 10.4℃, 1월 평균기온 -3.9℃, 7월 평균기온 24.1℃로서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연 강수량은 1,167㎜이며 속리산에 의한 지형성 강우가 많다. 산간분지 지역으로 겨울철 다른 곳보다 혹한이고 강설량과 적설일수 · 맑음일수 등이 많다.
회남면 법수리와 사탄리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도 마로면을 비롯, 군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분쟁지가 되었다. 신라는 470년(자비마립간 13)에 성을 축조하고 북진기지로 삼아 백제와의 국경을 이루었다. 산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다 하여 삼년산성(三年山城: 오정산에 있다 하여 일명 烏頂山城이라고도 함)이라고 하였다.
502년(지증왕 3)에는 주현제(州縣制)를 실시하면서 삼년산군(三年山郡)이라 하였다. 553년(진흥왕 14) 국경지대인 속리산에 의신조사(義信祖師)로 하여금 대사찰인 법주사를 창건하게 하여 국력을 과시하였다. 742년(경덕왕 1) 군의 명칭을 삼년군(三年郡)으로, 미곡현을 매곡현(眛谷縣)으로 각각 개칭했고, 연산군(燕山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통일신라 때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한때 지배한 일이 있으며, 뒤에 후백제의 땅이 되었다.
고려가 통일하자 보령(保齡)으로 고쳐졌고, 뒤에 잘못 전해져 보령(保令)이라 칭하였다. 928년(태조 11)에 후백제가 고려의 경계를 넘어 침입해 오자 태조는 여러 장수를 시켜 막게 하고, 자신은 후백제의 삼년산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여 청주로 후퇴하였다.
940년에 매곡현을 회인(현재의 지명)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보령은 경상도 상주목에, 회인은 청주목에 속하였다. 1172년(명종 2) 보령에 감무가 설치되고, 회인은 회덕감무가 겸무하다가 1383년(우왕 9) 별도의 감무가 설치되었다.
1406년(태종 6) 충청우도의 보령과 음이 같아 혼동이 온다 하여 군의 명칭을 보은으로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413년 보은은 경상도 상주목 소속에서 충청도에 편입되었고, 회인에는 현감이 설치되었다. 세조대의 진관체제 하에서는 청주진관에 소속되었으며 현감이 절제도위를 겸임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병으로 명산대찰에 기도하기 위해 충청도와 경상도에 행차하던 중, 보은현을 지나 병풍송(屛風松)에서 하루를 지냈다 하여 이곳에 대궐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다음 날 왕이 말티고개를 넘어 속리산에 들어갈 때 가마가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 가지가 스스로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하였다. 이에 감격한 왕이 소나무에 정이품을 제수했으며, 이곳에서 왕의 병이 치유되자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보은(報恩)이라는 지명을 새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549년(명종 4) 삼년산성 내에 세워진 삼년성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상현(象賢)’이라는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2년(철종 13) 가혹한 징세와 관리들의 횡포 때문에 나라 안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회인에서도 농민의 항거가 일어났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대항하다가 순절한 김가기(金可幾),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경세(金景世) 등이 있다.
1893년(고종 30) 보은장 내에 2만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모여서 종래의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의 성격에서 벗어나 탐관오리의 징토와 외세 배척, 즉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걸고 집회를 가졌으나 정부의 무력진압과 위무로 실패하였다. 1895년 보은과 회인이 각각 군이 되었으며, 1914년 회인군과 대덕군의 일부를 병합, 보은군에 편입시켜 오늘날의 행정구역과 같아졌다.
1947년 1월 31일 속리면이 내속리면과 외속리면으로 나누어졌고, 1970년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3년 7월 1일 보은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2년 군청 소재지가 현 위치인 보은읍 이평리로 이전되었다. 1983년 2월 15일회북면 율산리가 수한면에, 세촌리가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는 내북면 중초리 · 산성리 · 노티리 · 용암리 · 봉평리 · 장곡리가 보은읍에, 회남면 노성리가 수한면에 편입되었고, 보은읍 누저리가 누청리로, 내속리면 묘막리가 만수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9년 1월 1일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삼승면 원남리에, 회북면 마동리 · 마구리 · 묘암리 및 회남면 염티리가 청원군 문의면(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89년 1월1일에는 대통령령 제12557호(1988.12.31공포)로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일부가 삼승면 원남리로 편입되었다. 2007년 8월 내속리면을 속리산면으로, 외속리면을 장안면으로, 회북면을 회인면으로, 대목리를 도화리로, 하개리를 개안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회남면 법수리와 사탄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었고, 탄부면 고승리와 삼승면 선곡리에서는 돌화살촉 · 돌도끼 · 돌칼 등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보은읍 어암리의 보은 삼년산성(사적, 1973년 지정)이 가장 오래된 산성이다. 그 밖에 회인면 중앙리에 매곡산성(昧谷山城)의 터와 회남면 남대문리의 호점산성(虎岾山城)의 터가 남아 있고, 내북면 창리의 주성산성(酒城山城), 마로면의 관기리 산성, 보은읍 산성리의 함림산성(含林山城), 속리산면 백현리의 잣재산성[柏峴山城] 등이 모두 석축으로 된 옛 산성들이다.
불교 유산은 속리산면 사내리의 속리산 법주사 일원(명승, 2009년 지정)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 목조건축물로는 법주사 팔상전 · 법주사 원통보전 · 법주사 대웅보전 · 법주사 사천왕문 · 조사각 · 능인전 등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1962년 국보로, 법주사 원통보전은 1987년 보물로, 법주사 대웅보전은 1987년 보물로, 법주사 사천왕문은 197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상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 1963년 지정) ·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보물, 2004년 지정) · 법주사 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 등이 대표적이다.
석조물로는 법주사 쌍사자 석등 · 법주사 사천왕 석등 · 법주사 석련지 · 법주사 세존사리탑 · 법주사 석조 · 법주사 철솥 · 법주사 벽암대사비 · 법주사 자정국존비 등이 있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은 1962년 국보로, 법주사 사천왕 석등은 1963년 보물로, 법주사 석련지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세존사리탑은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법주사 석조는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법주사 철솥은 2004년 보물로, 법주사 벽암대사비와 법주사 자정국존비는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 ·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 · 속리산사실기비, 마로면의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 등의 석조물과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 순조 태실 등 다수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은 2004년 보물로,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은 2004년 보물로, 속리산사실기비는 1989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은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은 1985년 보물로, 순조 태실은 197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보은읍 교사리의 보은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회인면 눌곡리의 보은 풍림정사(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수한면 차정리의 보은 후율사(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마로면 관기리의 고봉정사(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장안면 서원리의 상현서원(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보은읍 종곡리에 모현암(慕賢庵), 산성리에 백봉사(柏峯祠), 회인면 애곡리에 상현사(尙賢祠), 회남면 신추리에 추양사(秋陽祠)가 있다. 모현암은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성운(成運) · 김천부(金天富)가 을사사화를 계기로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건물로, 1887년(고종 24) 후학들이 양현(兩賢)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암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백봉사는 이천계(李天啓)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며, 상현사는 1549년(명종 4)에 우탁(禹倬) · 우길생(禹吉生) · 우현보(禹玄寶) 등 3대의 위패를 봉안하여 창건한 것이다. 추양사는 조선 말의 학자 이상수(李象秀) 등 7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12년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한편, 관아건물로는 1982년 보은읍 삼산리의 보은동헌과 회인면 중앙리의 회인 인산객사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가옥으로는 삼승면 선곡리의 보은 최감찰댁, 99칸 집으로 유명한 장안면 개안리의 보은우당고택과 선병묵 고가 · 선병우 고가 등이 있다. 보은 최감찰댁과 보은우당고택은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선병묵 고가오 ㅏ선병우 고가는 1986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탄부면 하장리의 익재영당에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제현 초상이 보존되어 있고, 장안면 불목리에 198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광국지경록 목판이 있다.
보은읍 성족리에 성운 묘소 및 묘갈(충청북도 기념물, 1986년 지정), 지산리에 김수온 부조묘(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한편, 속리산면 구병리에는 1994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보은 송로주가 전승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속리산면 상판리에 속리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과 사내리에 보은속리산의 망개나무(천연기념물, 1968년 지정)가 있으며, 장안면 보은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1988년 지정)는 수령이 600년으로 정이품송과는 내외간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보은읍 교사리에 세종 연간에 창건된 보은향교와 회인면 부수리의 회인향교(懷仁鄕校)가 대표적이다. 장안면 서원리에는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상현서원(象賢書院)이 있다.
이 서원은 1549년에 성제원(成悌元)이 삼년산성 내에 김정독형원(金淨獨亨院)을 건립하고 삼년성서원이라 한 뒤 1610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672년(현종 13)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6년 김문희(金文熙) · 송근수(宋近洙) 등이 재건했고, 1919년 어윤원(魚允元) · 정호섭(鄭浩燮) 등이 중수하였다.
삼승면 선곡리의 금화서원(金華書院)은 1758년(영조 34)에 설립되었다가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1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 밖에 1872년 박문호(朴文鎬)가 세운 풍림정사가 회인면 눌곡리에 있는데, 그는 이곳에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많은 저술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사립으로 설립된 진명학교(進明學校)와 완명학교(完明學校)가 있다. 진명학교는 1906년 회인 지방 유지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다가 폐교된 것을 1909년 회인군수 권병필(權丙弼)이 회인향교 명륜당에 진명학교를 재설치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이전하여 사립 회인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학교는 1912년 3월 회인공립보통학교가 되었으며, 현재는 회인초등학교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1909년에 설립된 완명학교는 1911년 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삼산초등학교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사회 · 문화 기관으로는 군립도서관이 군민들의 독서와 문화 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1967년에 설립된 보은문화원은 향토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군민축제인 속리축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집단놀이 로는 줄다리기와 물다리기가 있다.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초순에 윗마을 · 아랫마을 또는 개울을 중심으로 양쪽 마을에서 새끼줄을 꼬아 한 마을은 암줄을, 다른 마을은 수줄을 20∼30m 길이로 만든 다음 들판이나 개울가에서 수줄 끝을 암줄 끝에 넣고 기다란 말뚝을 끼워 빠지지 않게 한 뒤 마을사람들이 줄을 당긴다.
이 줄다리기는 부녀자와 농악대의 응원 속에 남자들이 세 번 당겨 두 번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때 이기는 마을은 풍년이 들고 지는 마을은 흉년이 든다고 하여 줄다리기로 농점(農占)을 쳐서, 이긴 마을은 기뻐하고 진 마을은 슬퍼한다.
물다리기는 산을 사이에 둔 속리산면 백현마을과 산외면 백석마을 사람들이 하는 놀이이다. 백현마을에서는 자기 마을에 있는 우물의 수원(水源)이 백석마을의 우물에 있다 하여 정월보름에 백석마을로 물을 길러 간다. 백석마을의 우물물을 길어다 백현마을의 우물에 넣어야 물이 잘 솟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백석마을에서는 백현마을에서 물을 길어 가면 백석마을의 우물물이 귀해진다 하여 이를 막으니 자연히 물을 훔치려는 쪽과 물을 지키려는 쪽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백현마을에서 물을 훔쳐 가면 백석마을에서는 우물 옆의 땅을 파서 물줄기를 끊는다.
그러면 백현마을에서는 농악대를 앞세우고 백석마을 앞에 와서 농기를 숙이고 화해를 청한다. 그리고 백석마을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두 마을의 농악대와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며 하루를 즐겁게 놀고 끊었던 물줄기를 다시 메운 뒤 헤어진다.
본래 이 물다리기는 ‘복토(福土)훔치기’와 같은 주술행위가 후대에 놀이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농군들이 낫을 던져 낫 끝이 땅에 꽂히는 내기를 하는 ‘낫치기’가 있는데, 이 때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대신 풀이나 나무를 해준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산신제 · 탑신제 · 서낭제 · 거리제 등이 행해진다. 산신제는 산 위에 있는 나무나 바위, 당집에서 지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 산중사람들이 매년 10월 인일에 속리산 봉우리에 있는 대자재천왕사에서 신을 법주사로 모셔다가 제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대자재천왕제가 바로 속리산신제이다.
옛날 속리산신제에서는 나무로 남근을 깎아 붉은 칠을 하여 속리산 여신에게 공물로 바쳤는데 법주사 승려들이 이것을 인도의 남근 신앙인 대자재천(大自在天) 신앙으로 잘못 이해해서 와전된 것이다.
조선 말기에 법주사 승려들은 속리산신제가 끝나면 남근공의(男根供儀)를 연희화한 ‘송이(松茸)놀이’를 행했는데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지금은 속리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유교식으로 제사하고 있다.
탑신제는 마을 입구에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놓은 탑에 제를 지내고, 서낭제는 마을 입구의 서낭나무나 서낭당집에서 지내며, 거리제는 마을 골목에서 지내고 있다.
이러한 동제는 정월 초순 또는 10월에 일정한 날이나 택일한 날, 생기복덕한 제관이 제물을 차려놓고 유교식으로 제의를 행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제물에 수수팥떡이나 돈을 놓기도 하고 제의가 끝난 다음에는 폭약을 터뜨려 잡귀를 쫓기도 한다. 제기(祭期) 동안에는 제관과 동민 모두가 근신하며 지낸다.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담, 역사적 인물이나 자연물에 얽힌 전설, 오누이힘내기 설화 등이 주류를 이루어 전해 오고 있다. 속리산 수정봉에는 「거북바위전설(龜巖傳說)」이 유래한다.
당태종이 어느 날 세숫물 속에서 거북형상을 보고 이상히 여겨 술사에게 물으니 그는 이 거북 때문에 당나라의 재화가 동국으로 빠져나가고 국운도 쇠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당태종은 사람을 보내 이 거북바위를 찾아내고 그 목을 자르게 하니 바위에서 피가 솟았고, 등에 석탑을 세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마로면의 「속곳바위전설」은 청렴한 관리 장현광(張顯光)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는 보은현감으로 잠시 재직하는 동안 학문과 덕이 높아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전별의 선물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는 모두 물리치고 부임할 때와 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길을 떠났다.
보은군의 경계지역까지 왔을 때 길가에서 쉬다가 문득 그는 아내의 치마 밑으로 나온 비단 속곳을 보았다. 연유를 물으니 보은 백성들이 선물로 준 것이라 하므로, 그는 “청빈을 낙으로 살아왔는데 남에게 폐를 끼쳤다.”고 탄식하였다.
그러자 아내는 속곳을 벗어 바위에 걸쳐놓으며, “보은에서 받은 물건을 보은에 돌려준다.”고 하고는 길을 떠났다. 그 뒤 이 바위를 ‘속곳바위’ 혹은 ‘치마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장현광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조선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속리산 지역으로 피접(避接)을 왔는데, 이 때 많은 설화를 남겼다. 세조의 행렬이 보은읍을 지나 속리 쪽의 고개로 올라섰을 때 노승이 나타나 “오봉산 아래 행궁(行宮)을 짓고 쉬어가시오.”라고 이르고는 사라졌다.
세조는 노승의 말대로 행궁을 짓고 북을 달아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게 하였다. 그 뒤 노승이 나타났던 고개를 미륵불이 변신하여 나타난 곳이라고 하여 ‘미륵댕이고개’, 행궁을 지었던 곳을 ‘대궐터’, 북을 달았던 곳을 ‘북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말티고개를 넘은 세조 일행이 상판리에 당도하니 길가에 우산 모양의 소나무가 있었다. 세조가 연이 걸릴까 염려하자 늘어져 있던 소나무 가지가 하늘로 들려 길을 열어주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이 소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는 정이품의 품계를 소나무에 하사하였다. 그 뒤 ‘연거랑이소나무[輦掛松]’또는 ‘정이품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세조는 법주사와 복천암 사이에 있는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치료했는데, 이 웅덩이는 ‘목욕소’라 불리게 되었다. 그 밖에 속리산면 상판리 진터와 가마골에는 세조의 딸과 김종서(金宗瑞)의 손자가 부부가 되어 살았다는 이야기, 오누이 힘내기의 결과로 남게 되었다는 「삼년산성전설」이 전해 온다.
또, 국사봉의 「좌월대전설(坐月臺傳說)」과 욕심 부리다 쌀 나오는 구멍을 망쳤다는 「쌀바위전설」, 임경업(林慶業)이 무예를 닦았다는 「경업대전설」, 금돼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최치원설화(崔致遠說話)」, 한 효자가 겨울에 잉어를 잡아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효자연못설화」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요로는 이곳 특산물을 노래한 「대추노래」가 있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대추꽃이 떨어지면/ 보은청산 시악시들/시집못가 눈물난다.”라며 타령조로 부르는 것이다. 또한, 농요도 발달했는데, 대체로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논농사에서 「모찌는 노래」는 “들어내세 들어내세/ 이 모짜리를 들어내세/ 차고가세 차고가세/ 이 모판을 차고가세.”라고 선소리꾼이 두 장단 길이로 메기면 뒷소리가 따로 없이 일꾼 모두가 따라 제창한다.
「모심는 노래」도 “담상담상 닷마지기/ 해지기전에 빨리심세/ 빨리빨리 심드래도/ 모포기는 잘심구세.”, 또는 경상도와 인접한 영향으로 “상주함광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처녀야/ 이내품에 놀다가게.”를 역시 두 장단 길이로 메기면 일꾼이 따라 부른다.
그러나 「논매는 노래」는 먼저 선소리꾼이 “일락서산 해떨어지고/ 월출동녘 달돋아온다.”라고 메기면 일꾼들이 뒷소리로 “잘허고 잘헌다 얼카 산이가 잘헌다.”는 사설로 받는다.
그리고 의식요로 「상여소리」는 느린 중중모리로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저승길이 멀다해도/ 죽고나니 저승일세.”라고 두 장단으로 메기면, 상여꾼들은 “오호오호”를 한 장단으로 받는다. 그러나 갈 길이 멀면 자진가락으로 바꾸기도 한다.
여성요로 「베틀가」 · 「물레질노래」 · 「방아노래」 등이 있지만 현재 구연하는 사람이 적다. 민요라면 흔히 「노랫가락」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는 메나리목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잡가로는 「천자풀이」 · 「화투놀이」등이 불리고, 단가로는 「만고강산」 · 「백발가」 등이 불리고 있다.
이 군의 토지이용은 총면적 584.25㎢ 중 임야가 400.23㎢로 논이 60.13㎢로 밭이 51.56㎢를 나타내고 있어 논이 밭보다 약간 우세하다. 이곳에서는 속리산면의 삼가저수지, 내북면의 상궁저수지, 보은읍의 종곡저수지 등이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내륙고원지대로서 한랭하고 논 면적이 협소하여 식량 증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보은읍 · 삼승면 · 탄부면에 대단위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미곡 증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서류 · 두류 · 잡곡, 채소류는 참외 · 배추 · 수박 · 무 · 고추, 특용작물로는 참깨 · 들깨와 과실류로 사과 · 복숭아 · 포도 · 감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특히, 회인면과 회남면 일대는 기후가 온화하고 바람이 약하여 감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한 곳으로서 예로부터 감을 많이 생산하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회인월하감은 껍질이 얇고 살이 많아 옛날에 궁중의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개 · 젖소 · 닭 · 꿀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임산물로는 대추 · 밤 · 표고버섯 · 약초 · 산나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보은대추는 이 고장의 특산물로 유명하고, 매년 대추아가씨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 가행되는 것은 20개의 광구 중 8개이다. 고령토 1,239M/T, 석탄 7만 7304M/T을 생산하고 있다. 마로면에서는 1개의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석탄 6만 6601M/T, 토상흑연 4,300M/T을 생산하고 있다.
보은읍 금굴리에 조성된 2만 평의 공장부지에는 진미식품 · 양성유산업 · 대양인터내셔셜 등이 입지하여 있어 식품과 산업용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외속농공단지는 1990년 12월 장안면, 보은읍에 조성된 농공단지이나 삼승면과 내북면에 업체가 비교적 많은 것은 입지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기 때문이다.
속리산면 사내리는 숙박시설과 각종 토산품점 · 음식점 등을 갖춘 관광취락지구로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관광은 주로 석가탄신일을 전후한 4·5월과 단풍계절인 10·11월에 집중되고 있으나 여름철에도 많은 피서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다. 보은읍에도 많은 숙박시설 · 음식점 · 상가 · 환경업소 등이 있어 속리산 관광객은 물론, 주변 지역의 주민에게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조선 말기 보은 관내에는 보은읍에 5·10일의 보은 읍내장, 삼승면에 2·7일의 원남장, 마도면에 4·9일의 신기장, 회인에 2·7일의 회인 읍내장, 북면에 3·8일의 두산장, 강외면에 4·9일의 풍암장 등이 열렸다. 그러나 1926년 말에는 5·10일의 보은 읍내장, 4·9일의 관기장, 1·6일의 원남장, 4·9일의 회인장만 개시되었다. 그 뒤 창리 · 구티 · 영당 · 장안 · 상판 등에 정기시장이 증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재래시장이 서서히 쇠퇴하면서 슈퍼마켓 등의 상설시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보은 읍내장은 도내에서도 큰 시장이었으나 경부선의 개통으로 상권을 옥천과 대전에 빼앗기면서 1986년 개시일도 6·11일로 변경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원남장도 3·8일로 개시일을 변경하게 되었다.
1992년 말에는 보은장 · 관기장 · 원남장 · 회인장, 내북면 창리의 창리장만 남게 되었으며, 현재는 이들 시장이 일반시장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보은읍 삼산리의 중앙시장은 1978년에 개장되어 읍내는 물론 인근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여 중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도로는 보은읍을 중심으로 국도 19호, 37호, 25호선과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으며,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군내를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속리산은 보은군 · 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우리나라 팔경(八景)의 하나로서 법주사를 비롯한 관광자원이 보은군에 집중되어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 부르고 있다. 속리산은 수려한 경치와 법주사, 다양한 동식물 등을 포함하고 있어 1966년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비로봉 · 관음봉 · 길상봉(吉祥峰) · 문수봉(文殊峰) · 보현봉(普賢峰) · 묘봉(妙峰) · 수정봉(水晶峰) 등의 8개 봉우리와 문장대(文藏臺) · 입석대(立石臺) · 경업대(慶業臺) · 배석대(拜石臺) · 학소대(鶴巢臺) · 신선대(神仙臺) · 봉황대(鳳凰臺) · 산호대(珊湖臺) 등 8대가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 신라의 의신조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경내에 국보 3점, 보물 5점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속리산과 더불어 명산대찰로 꼽히고 있다. 속리산면 사내리 일대에는 이곳을 찾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대단위 관광취락이 조성되어 있다.
한편, 어암리의 삼년산성은 470년에 축성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산성으로서 현재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며, 산성 아래에는 천연기념물인 백송이 있어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1962년에 농업용 저수지로 준공된 속리산면 삼가리의 삼가저수지는 규모가 크고 호반 좌우로 속리산과 구병산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물이 깊고 맑아 빙어가 많이 서식하여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속리산면 만수리에서 남쪽의 구병산에 이르는 만수계곡과 서원계곡(書院溪谷)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가 어울려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어 제2의 화양계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밖에 속리산면의 오리숲, 장안면의 말티고개 · 개안리 고분군, 마도면의 구병산과 서당골 관광농원, 회남면의 회남대교 등은 훌륭한 관광지가 되고 있다.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62.31㎢, 인구 1만 527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삼산리이다. 본래 군청이 있었으므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여 동변(東邊) · 서변(西邊) · 하장(下獐) · 교동(校洞) 등 14개 리(里)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내면(山內面)의 종동 · 종서 · 종남 · 월안 등 25개 리와 서니면(西尼面)의 10개 리, 사각면(思角面)의 13개 리를 병합해 읍내면이라 하고 22개 리로 개편하였다. 1917년 보은면으로 개칭하고 1973년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7년 내북면의 중초 · 산성 · 노티 · 봉평 · 장곡 등 5개 리를 편입하였다.
동쪽은 학림산 · 수철령 · 구룡치 · 새목이재 등 소백산맥의 험준한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고, 서쪽은 노령산맥에 가로막힌 보은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이 읍의 중심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관류하여 종곡천 · 중초천(中草川) · 항건천 · 거현천 등을 합류하면서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보청천 유역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대추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 · 인삼 · 참깨 · 과수의 재배가 성하며 금굴리와 길상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도로는 청주∼상주 간, 괴산읍∼영동 간, 옥천읍∼속리산 간 국도 등이 읍내에서 교차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어암리에 신라 때 축성한 삼년산성이 있으며, 산성리에는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을 이루기 위해 쌓았던 함림산성이 있다. 또한, 교사리의 보은향교, 삼산리의 보은동헌, 지산리의 김수온 부조묘, 성족리의 성운 묘소 및 묘비(갈), 김정 유허비, 세강재 등을 비롯한 많은 정려문과 모현암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어암리의 백송이 있다.
삼산리(三山里) · 죽전리(竹田里) · 장신리(長新里) · 교사리(校士里) · 수정리(水井里) · 지산리(芝山里) · 금굴리(今掘里) · 월송리(月松里) · 어암리(漁巖里) · 성주리(城舟里) · 이평리(梨坪里) · 길상리(吉祥里) · 대야리(大也里) · 누청리(樓淸里) · 강신리(江新里) · 성족리(聲足里) · 종곡리(種谷里) · 학림리(鶴林里) · 강산리(江山里) · 중동리(中東里) · 신함리(新含里) · 풍취리(風吹里) · 산성리(山城里) · 중초리(中草里) · 노티리[老峙里] · 용암리(龍巖里) · 봉평리(鳳坪里) · 장곡리(獐俗里) 등 28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3.47㎢, 인구 1,90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리이다. 본래 보은군내 북쪽이 되므로 내북면이라 하여 서지(西枝) · 두평(斗坪) 등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성면(朱城面)의 대안 · 엽동 등 19개 리와 회인군 동면의 4개 리를 병합해 다시 내북면이라 하고 21개 리로 개편하였다.
중초리를 면 소재지로 하다가 1934년 이원리로 옮겼다. 1946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회북면의 염둔 · 법주 · 용수 · 상국의 4개 리를 병합하여 25개 리가 되었다가 1983년 회북면의 세촌리를 병합하고 면사무소를 이원리에서 창리로 이전하였다.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중초 · 산성 · 노티 · 용암 · 봉평 · 장속의 6개 리를 보은읍에 넘겨주었다.
북부에 국사봉 · 구봉산(九峰山, 506m) · 구룡산(九龍山, 554m) 등이 솟아 있으며, 보청천이 서남부에서 발원하여 남부에서 동남류하고 달천의 지류가 서부에서 동북류하고 있어 창리를 중심으로 분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여 고추 · 잎담배 · 감 · 인삼 등의 특용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봉황리는 고추, 법주리는 인삼 등의 주산지이다. 가축으로는 한우 · 개 · 닭 · 꿀벌 등을 사육하고 있다.
도로는 청주 · 보은 · 영동 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회인면∼청원 간의 지방도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창리에 주한산성이 있다. 이원리(泥院里) · 서지리(西枝里) · 두평리(斗坪里) · 성치리(星峙里) · 적음리(積陰里) · 봉황리(鳳凰里) · 성암리(聖巖里) · 창리(倉里) · 동산리(東山里) · 도원리(桃源里) · 화전리(花田里) · 법주리(法注里) · 대안리(大安里) · 아곡리(峨谷里) · 용수리(龍壽里) · 세촌리(世村里) · 상궁리(上弓里) · 신궁리(新宮里) · 하궁리(下宮里) · 염둔리(鹽屯里) 등 20개 리가 있다.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46㎢, 인구 2,4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관기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조선시대 역마(驛馬)를 기르던 지역이라 하여 마로면이라 하고 한중(閑中) · 백려(白麗) · 변둔(卞屯)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양 · 성지 · 쌍암의 3개 리를 탄부면에 넘겨주고 왕래면(旺來面)의 9개 리와 탄부면의 5개 리와 속리면의 불목리 일부를 병합해 14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북부 면계에 백지마재(753m) · 구병산, 동북부의 면계에 삼승산(三升山, 574m), 남부 면계에 백자미티(340m), 중앙부에 시루봉이 솟아 있어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보청천이 서부를 지나 남류하고 동부는 보청천의 지류가 서류하다가 기대리에서 보청천에 합류하여 남류하고 있는데, 이들 하천 유역에는 좁은 산간분지가 발달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미곡을 비롯하여 잎담배 · 호두 · 마늘 등의 특산물을 생산한다.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석탄과 토상흑연이 채굴되고 있다. 도로는 보은∼상주 간의 국도와 연결되고, 면의 남북으로 지방도가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원정리에 삼층석탑, 관기리에 고봉정사 · 관기산성 · 효부문, 적암리에 고려 중기 때 청자도요지, 세중리에 선사시대 선돌, 한중리에 조선 선조 때 충신 윤여익(尹汝翼)의 정문 등이 있다.
관기리(官基里) · 수문리(水門里) · 기대리(箕大里) · 오천리(梧川里) · 원정리(猿汀里) · 세중리(世中里) · 갈전리(葛田里) · 변둔리(卞屯里) · 한중리(閑中里) · 소여리(所餘里) · 임곡리(壬谷里) · 적암리(赤巖里) · 갈평리(葛坪里) · 송현리(松峴里)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8.71㎢, 인구 1,88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티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속리산 바깥이라 하여 산외면이라 하고 여동(汝洞) · 암동(巖洞) · 장갑(長甲) · 백석(白石)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북면의 산대 · 중티 · 길동 · 탕동 · 천산의 5개 리를 병합하여 18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였다.
중앙부에 탁주봉(濯洲峰, 620m) · 금단산(717m), 동부의 면계에 활목고개 · 묘봉 · 성고개, 남부의 면계에 수철령이 솟아 있고, 서부의 면계에도 높은 산이 있어 대부분이 산지이다. 남한강의 상류인 달천이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동부를 북류하면서 중앙부에서 서북 방향으로 곡류하고 있는데 하천 유역의 어온리 · 중티리 · 원평리 · 장갑리 · 신정리 등 곳곳에 산간분지가 발달해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여 미곡 생산은 적고 잎담배 · 인삼 · 고추 · 양잠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잎담배는 경제작물로서 가장 큰 농가소득원이 되고 있다. 도로는 청주∼보은 간의 국도에 연결되는 지방도가 중앙부를 통과하고 속리산으로 통하는 도로는 포장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봉계리의 영모재(永慕齋), 장갑리의 월헌정(月軒亭) 등이 있다. 대원리와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검단산은 백제시대에 검단이라는 승려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고운암(孤雲庵)이라는 암자는 최치원이 공부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내에는 신정리의 덤바위, 아시리의 섬바위, 장갑리의 칼바위, 탁주리의 평봉바위 등의 이름난 바위가 많다. 봉계리에는 능성구씨(陵城具氏)와 현풍곽씨, 아시리에 능성구씨 등의 동족마을이 있다.
구티리[九峙里] · 봉계리(鳳溪里) · 아시리(牙時里) · 문암리(門巖里) · 백석리(白石里) · 장갑리(長甲里) · 신정리(新正里) · 대원리(大元里) · 동화리(東華里) · 탁주리(濯洲里) · 원평리(院坪里) · 오대리(五大里) · 산대리(山大里) · 가고리(加古里) · 어온리(於溫里) · 이식리(梨息里) · 중티리(中峙里) · 길탕리(吉湯里) 등 18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29㎢. 인구 2,51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남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삼승산의 이름을 따서 삼승면이라 하고 삼승 · 각동(角洞) · 상석남(上石南)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니면(西尼面)의 10개 리와 옥천군 안남면 오산리의 일부를 병합해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9년 안남면 오덕리 일부를 원남리에 편입하였다.
서부의 군계에 금적산, 동남의 군계에 삼승산 등이 솟아 있으나 대부분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미곡을 비롯하여 잎담배와 과수 재배가 활발한데, 선곡 · 우진 · 탐금 일대에는 과수단지가 조성되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구릉지에 소규모 공장을 유치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원남은 고려 공민왕이 안동에서 청주로 올 때 머물렀던 곳으로 원암역(元巖驛)이 있었으며, 원남장은 2·7일에 개시되는 삼승면 유일의 정기시장이다. 보은시장이 개시일을 6·11일로 바꿈에 따라 3·8일로 개시일을 변경하기도 하였다.
도로는 청주 · 보은 · 영동 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마도면∼옥천읍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선곡리의 최태하 가옥과 금화사(金華祠), 원남리의 송시열 유허비, 서원리의 산앙사지(山仰祠址), 둔덕리의 둔덕단(屯德壇), 탄금리의 제궁비(濟窮碑) 등이 있다.
원남리(元南里) · 내망리(內望里) · 천남리(川南里) · 탄금리(彈琴里) · 상가리(上可里) · 달산리(達山里) · 우진리(右陣里) · 송죽리(松竹里) · 둔덕리(屯德里) · 선곡리(仙谷里) · 서원리(西原里)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2.23㎢, 인구 2,19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판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속리산 밑에 위치하므로 속리면이라 하여 백현 · 북암 · 하판 · 중판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7년 속리면을 갈라서 안쪽이 되므로 내속리면이라 하여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고 1987년 묘막리를 만수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7년 속리산면으로 개칭하였다.
북부와 동부의 면계에 묘봉 · 관음봉 · 천황봉 · 형제봉(兄弟峰, 803m) 등의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서부는 성고개(489m) · 수철령 · 구룡치 · 새목이재 · 말티재, 남부는 회엄이재 · 구병산 등으로 둘러싸여 산지지대를 이루고 있다. 속리천의 지류가 중앙부를 통과하여 유역에 소규모의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여 감자 · 채소 · 고추 · 잎담배 등을 많이 재배한다. 또한, 고산성 식물인 고사리 · 표고버섯 · 취나물 · 송이버섯 등은 관광토산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사내리에는 속리산 문전 관광취락이 조성되어 있다.
도로는 청주∼보은 간의 국도가 남부를 통과하고 법주사까지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괴산 · 보은 · 옥천 간 국도가 서부를 통과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내리에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법주사가 있는데, 속리산 법주사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속리산의 정이품송, 보은속리산의 망개나무가 있다. 상판리(上板里) · 갈목리(葛目里) · 중판리(中板里) · 하판리(下板里) · 북암리(北巖里) · 백현리(栢峴里) · 사내리(舍乃里) · 삼가리(三街里) · 구병리(九屛里) · 도화 · 만수리(萬壽里)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73㎢, 인구 1,9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후평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모래가 많아 비가 와도 물이 귀하므로 수한면이라 하고 후평(後坪) · 와야(瓦冶) · 운천(云川)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인군 동면의 차령리와 산철리 각 일부를 병합해 14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6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회북면의 차정리를 병합하고 1983년 회북면 율산리와 1986년 회남면 노서리를 병합해 17개 리를 관할하면서 면사무소를 병원리에서 후평리로 이전하였다.
중앙부에 항건산(恒乾山, 398m) · 피난봉(393m)이 솟아 있고 서부와 남부의 면계에 노성산(老城山, 552m) · 거멍산(494m) · 덕대산(德垈山, 573m) 등 비교적 높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동부는 저산성 산지로 되어 있다. 보청천의 지류인 항건천이 중앙부를 동북류하고 있고 거현천이 동부지역에 남류하면서 유역에 좁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유역평야를 중심으로 미곡 · 잎담배 · 고추 · 채소를 생산하고 있으며 과수 재배도 늘고 있다. 특히, 후평리에는 고등채소단지가 조성되어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도로는 청주 · 보은 · 상주 간 국도가 북부를 동서로 통과하고, 옥천∼보은 간의 국도가 동부를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회인면과의 경계에 있는 수리티는 조헌(趙憲)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격퇴시킨 곳으로 유명하며, 장선리의 피난봉은 조헌이 가족을 피신시키고 의병을 모집하여 단련시킨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유적은 차정리의 후율사, 발산리의 발산병사(鉢山丙舍) · 숭모재(崇慕齋), 후평리의 보덕사(報德祠), 성리의 금운사(錦雲祠), 동정리의 평포재(坪浦齋), 광촌리의 영모재 등이 있다.
병원리(並院里) · 교암리(敎巖里) · 후평리(後坪里) · 발산리(鉢山里) · 성리(星里) · 초계리(苕溪里) · 묘서리(畝西里) · 거현리(巨峴里) · 광촌리(光村里) · 질신리(秩新里) · 장선리(長善里) · 오정리(梧亭里) · 동정리(桐井里) · 차정리(車井里) · 산척리(山尺里) · 율산리(栗山里) · 노성리(老城里) 등 17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86㎢, 인구 1,6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내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속리산 밑이 되므로 속리면이라 하여 백현 · 불암 · 하판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7년 속리면을 나누어 바깥을 외속리면이라 하고 8개 리와 탄부면 구인리를 병합해 9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2007년 장안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300m 이상의 산지이고 보청천의 지류인 삼가천이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으나 평야는 적다. 다만, 서부에서 동남 방향의 도로를 따라 산간분지 내에 평야가 있을 뿐이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미곡을 비롯해 감 · 밤 · 잎담배 등의 경제성 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구인리와 보은읍 길상리 중간에 1992년 8만평 규모의 농공단지를 조성하였다.
장재리와 속리산면의 길목 사이에 있는 말티고개와 그 아래에 조성된 장재저수지는 경관이 아름다워 최근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이 고개에는 고려 태조가 닦은 어로(御路)의 흔적이 있고 장재저수지 아래에는 한옥마을로 된 민속촌이 있다. 도로는 보은∼상주 간의 국도가 남서부를 통과하고, 장내리에서 속리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관광도로가 있으며, 보은읍∼속리산 간의 국도가 북부를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불목리의 선국지경록 판본, 서원리의 상현서원, 개안리의 선병국 가옥 · 선병우 고가 · 선병묵 고가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서원리의 소나무가 있다. 장내리(帳內里) · 서원리(書院里) · 개안 · 황곡리(荒谷里) · 봉비리(鳳飛里) · 불목리(佛目里) · 오창리(悟倉里) · 장재리(壯才里) · 구인리(求仁里)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1.61㎢, 인구 1,8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장리이다. 본래 보은군 지역으로 탄부면이라 하여 장암(壯巖) · 경상(景祥) · 덕동(德洞) · 덕동(德洞)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대 · 상소 · 중소 · 하소 등의 4개 리를 마도면에 넘겨주고, 마도면의 대양 · 성지 · 쌍암의 3개 리와 사각면(思角面)의 구인 · 신동 · 평각 · 고승 · 사직 등 8개 리, 왕래면(旺來面)의 임한리를 병합해 14개 리로 개편했다가 1946년 구인리를 외속리면에 넘겨주고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북부와 중앙부는 비교적 낮은 산지로 되어 있고 남부는 면계에 비조티[飛鳥峙, 418m] · 을미산(451m) 등이 있어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고 특히, 중앙부의 저지에는 보청천이 서북부에서 남류하다가 동류하면서 비교적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양잠 · 고추 · 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군내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서 질이 좋은 미곡을 생산하고 있다. 근래에는 옥수수 생산이 활발하여 농가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도로는 보은∼상주 간의 국도가 동부를 통과하고 삼승면∼보은읍 간 지방도가 서남부를 지나고 있으나 북부는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하장리의 이제현의 영당과 월성명정(月城名旌), 덕동리의 충혼사, 평각리의 효자정문, 사직리에 사직단지 등이 있다. 하장리(下長里) · 구암리(九巖里) · 대양리(大陽里) · 성지리(城池里) · 벽지리(碧池里) · 덕동리(德洞里) · 장암리(壯巖里) · 매화리(梅花里) · 사직리(士直里) · 고승리(高升里) · 평각리(坪角里) · 상장리(上長里) · 임한리(林閑里) 등 13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54㎢, 인구 7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거교리이다. 본래 회인군 지역으로 회인읍의 남쪽이 되므로 남면(南面)이라 하여 상추(上楸) · 하추(下楸) · 금곡(金谷)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東面)의 4개 리, 강외면(江外面)의 5개 리, 서면(西面)의 9개 리, 옥천군 북일소면(北一所面)의 대촌, 안내면의 용촌리 등을 병합해 20개 리로 개편하였다. 1987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노성리를 수한면, 1989년 염티리를 청원군 문의면 등에 넘겨주고 현재 18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대청 댐의 건설로 신곡 · 조곡 · 산수 · 거교 · 사탄 · 매산 · 어성 · 분제 등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됨으로써 1980년 면 소재지를 신곡리에서 거교리로 이전했고, 관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면으로 되었다. 북동지역은 400m 이상의 높은 산지이지만 남부에는 금강이 S형으로 곡류하고 있고 금강의 지류인 회인천이 중앙부를 남류하면서 관통하고 있으나 유역에는 경지가 적고 평야는 수몰되어 높은 산지만 남게 되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여 마늘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은 줄었지만 질이 좋은 감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으며, 대청호를 이용한 내수면 어업도 한다. 도로는 청주 · 보은 · 상주 간 국도 25호와 연결되어 있고, 대전∼회인 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다. 대청호반에는 회남교 · 남대문교 · 거신교 등의 교량이 건설되었다.
문화유적은 신추리의 추양사, 남대문리의 호점산성, 사탄리의 구석기 유물 등이 있다. 신곡리(新谷里) · 판장리(板藏里) · 조곡리(鳥谷里) · 거교리(巨橋里) · 금곡리(金谷里) · 신추리(新秋里) · 은운리(隱雲里) · 분제리(分諸里) · 사음리(舍音里) · 법수리(法水里) · 산수리(山水里) · 남대문리(南大門里) · 매산리(梅山里) · 사탄리(沙灘里) · 송포리(松浦里) · 어성리(漁城里) · 용호리(龍湖里) 등 18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03㎢, 인구 1,9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앙리이다. 본래 회인군의 군청이 있었으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건천(乾川) · 시송(柴松) · 황평(黃坪)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서면의 7개 리와 동면의 18개 리, 남면 신대리와 보은군 내북면의 중궁, 상궁의 각 일부와 수한면 산척 일부를 병합해 회안군을 남북으로 나누었다.
이때 이곳이 북쪽이므로 회북면이라 하여 보은군에 편입하고 25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6년 염둔 · 법주 · 용수 · 신궁 등의 4개 리는 내북면, 차정리는 수한면에 넘겨주어 20개 리가 되었다. 1983년 율산리는 수한면, 세촌리는 내북면에 넘겨주고, 1989년 마동리 · 마구리 · 묘암리를 청원군에 넘겨주어 현재 15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2007년 명칭을 회인면으로 바꾸었다.
고도 400m 내외의 산지를 중심으로 전역이 산악지형을 이루고 있고 금강의 지류인 회인천이 동북부를 흘러 북에서 남류하는데, 하천 유역에는 좁은 평야가 있을 뿐이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미곡을 비롯해 특용작물로 마늘 · 잎담배 · 고추 · 참깨를 생산하고 과일로는 감 · 배를 생산하고 있다. 청주∼보은 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통과하고 대전으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눌곡리의 풍림정사와 후성영당(後聖影堂) · 첨소재(瞻掃齋), 중앙리의 인산객사 · 회인사직단과 여단, 부수리의 회인향교 · 성황사, 아미산의 매곡산성, 애곡리의 상현사(尙賢祠), 신문리의 영묘재(永墓齋) 등이 있다.
중앙리(中央里) · 용촌리(龍村里) · 오동리(梧桐里) · 신문리(新門里) · 고석리(高石里) · 쌍암리(雙巖里) · 갈티리[葛峙里] · 건천리(乾川里) · 애곡리(艾谷里) · 부수리(富壽里) · 눌곡리(訥谷里) · 송평리(松坪里) · 죽암리(竹巖里) · 신대리(新垈里) · 용곡리(龍谷里) 등 15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