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3년(현종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상용(金尙容)과 김상헌(金尙憲)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1년(현종 12)에 ‘鳳鳴’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동재(東齋)·서재(西齋)·강당·신문(神門)·협문 및 동서 익랑(翼廊), 감고방(監考房) 등이 있었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어 그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다.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