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 ( )

부여 관북리 유적 전경
부여 관북리 유적 전경
고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도성인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궁궐터.
이칭
이칭
전백제왕궁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2001년 02월 05일 지정)
소재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3번지 외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도성인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궁궐터.
개설

부여 관북리유적은 부여읍내의 북쪽에 있는 부소산의 남쪽 및 서쪽 기슭 일대에 위치한다. 1982~1992년에 걸친 충남대학교박물관의 조사와 2001~2008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이 일부 확인되었다. 1983년 9월에 충청남도 기념물 전백제왕궁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왕궁지로서 이 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2001년 2월 5일에 사적으로 다시 지정되었으며, 발굴조사를 마친 구역은 정비되었다.

내용

1982년 이래의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 건설과 확장을 위해 조성한 성토(盛土) 대지와 그 위에 만들어진 대형 전각건물 등 기와로 기단을 꾸민〔瓦積基壇〕건물터, 남북 · 동서방향의 도로, 축대 및 배수로, 목곽수조(木槨水槽) 및 기와 배수관, 연지(蓮池), 우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대지 조성 이전에 왕실 수공업 생산지였음을 보여주는 철기, 금 및 금동제품 제작소 등 공방(工房)시설과 함께 나무와 돌로 구축한 지하곳간이 밀접한 저장시설단지 등도 확인되었다.

이처럼 공방시설이나 창고시설이 폐기되고 정연한 배치의 도로, 기와기단건물, 연못 등으로 대체된 시기는 성토층 속에 포함된 중국 자기 등을 통해 볼 때,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양상은 사비도성의 점진적 확대에 따른 궁성 중심 권역의 확장과 관련될 개연성이 높다.

그동안 관북리유적에서는 금동광배, 도가니, 다양한 목제품과 목간, 수부(首府)명 기와, 각종 인장와(印章瓦), 연화문 수막새, 사람얼굴이 그려지거나 찍힌 토기, 중국제 자기, 과일씨앗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징

왕궁의 존재와 관련하여 7칸×4칸으로 동서 길이 35m, 남북 길이 18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물터가 주목된다. 이 건물은 기와 파편을 다량 섞어 흙을 다지며 터를 돋은 후에 초석이 놓일 자리에 흙을 겹겹이 다져 쌓은 한 변 2.4m 안팎인 방형의 적심 시설을 총 36개나 만들었다. 이와 거의 똑 같은 규모와 형태의 건물이 익산 왕궁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는데, 4단으로 구획된 전각구역(殿閣區域)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중심 건물이다.

이외에 수부명 기와도 부여 관북리유적과 익산 왕궁리유적에서만 나타나고 있어 서로 성격이 같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부만 발굴조사된 부여 관북리유적의 구조는 이미 조사가 거의 완료된 익산 왕궁리유적의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건물과 유물을 통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부소산 기슭이 왕궁의 일부였음은 분명하지만 정전(正殿) 등이 위치한 중심구역과 왕궁의 전체적인 범위는 추정에 머물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관북리유적에서 발굴조사된 다양한 유구를 통해 단편적이지만 사비도성에서의 왕궁의 위치와 구조, 그리고 조성 과정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도로 구획과 대지 조성으로 이루어진 왕궁의 확장을 통해 사비도성 도시 계획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왕궁의 정확한 위치와 전체적인 범위가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앞으로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궁장(宮牆: 궁을 둘러싼 담장), 성토대지, 건물과 도로의 흔적 등을 근거로 왕궁 내 주요 시설의 위치와 범위를 확정해갈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부여 관북리백제유적Ⅲ』(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
『부여 관북리백제유적Ⅳ』(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
『부여관북리백제유적발굴보고(Ⅱ)』(윤무병, 충남대학교박물관, 1999)
『부여관북리백제유적발굴보고(Ⅰ)』(윤무병, 충남대학교박물관, 1985)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성격과 시간적 위치-2008년 조사구역을 중심으로-」(남호현,『백제연구』5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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