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것을 그 뒤 찰방 유경상(劉景祥)이 유림과 협력하여 중건하였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계개루(繼開樓)·반하루(攀厦樓)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 왔다. 광복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